개종 끝에 1897년(37세)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에 취임한 말러는 독일계 선배인 글루크, 모차르트, 베토벤의 오페라를 자주 무대에 올렸다. 그럼, 살아생전 종교적 문제로 불편한 관계였던 바그너의 음악극은 어땠을까? 말러는 바그너에 대한 지지를 접지 않았다. 워낙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작이라 엄두를 내기 힘들었지만, 말러는 기회가 날 때마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지휘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던 말러는 42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다(1902년). 상대는 말러만큼이나 유명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말러보다 무려 19살이나 어렸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거장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첫 키스 상대라고 알려진 그녀의 이름은 알마(Alma Schindler, 1879-1965)다. 말러는 빈 사교계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결혼 즈음의 빈 시절은 말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말러의 교향곡은 매우 난해하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을 고르라면 아마 ‘5번’일 것이다. 5번 교향곡은 알마와 교제할 때 만들어졌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는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매우 아름다운 악장이다. 현악기의 서정적인 선율과 하프의 몽환적인 느낌이 어우러져 신묘함을 드리운다. 4악장은 말러의 알마에 대한 사랑고백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냥 설레는 사랑가는 아니다. 말러 특유의 불안감이 한 스푼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곡에는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티브가 숨어있다. 아마 중년의 말러가 젊고 아름다운 알마를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지 싶다. 이쯤에선 베토벤이 아름다운 1악장과는 달리 광폭한 3악장에서 (말러처럼)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월광소나타가 오버 랩된다. 5번 교향곡이 유명하게 된 건 토마스 만(Paul Thomas Mann, 1875-1955)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Morte a Venezia, 1971년 개봉) 때문이다. 영화 내내 작곡가 구스타프 아센바흐(더크 보거드 扮)가 미소년 타지오(비요른 안드레센 扮)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의 시선이 화면을 채울 때 4악장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능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아센바흐는 말러이고, 타지오는 (性이 다르지만,) 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2022년 개봉)에 이 4악장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 처음에는 서래의 남편이 산을 타며 듣는 음악으로 쓰이지만, 차츰 해준(박해일 扮)과 서래(탕웨이 扮)의 마음을 암시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