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부부당 자녀 출생이 0.7인으로 떨어졌다며 사회가 일대 혼란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 많았다.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은 걸핏하면 인구절벽을 염려하며 인구 늘이기에 혼신을 다하겠다고 장담한다. 예상하건데 다가오는 4월 총선에 나올 출마자들도 제각각 산업체를 수용하거나 무슨무슨 클러스트를 유치해 인구를 늘이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빈 공자 공약(空約)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약들은 실현 가능성도 없고 근원적인 문제해결 방법도 안 된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과연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걱정할 일로 봐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사회적 문제로는 인구감소가 불러올 여러 가지 미래 폐단들이 부각된다. 가장 큰 게 노동력 감소와 국민연금 등의 고갈이다. 인구감소는 이런 차원에서는 정말 심각하다.
따지고 보면 노동력 감소는 급속한 첨단화로 인해 일의 공정이 줄어들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점에서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판이기도 하다. 연금의 경우 혜택받을 사람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득권을 포기한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평생 연금을 부은 연금 1세대들이 그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니 정부가 연금개혁하겠다고 할 때마다 해당 정권이 표를 의식해 과감히 추진하지 못할 뿐이다.
또 한 가지, 출생만 가지고 인구감소를 염려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 왜 굳이 나라 안에서만 인구를 늘이겠다고 생각해야 하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대 교역국에 들고 온갖 사회적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정착된 나라다.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들에게 취업, 이민, 유학의 문을 넓혀준다면 우리나라 인구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지나친 국수주의, 순혈주의에 빠져 단일민족 운운하는 뒤떨어진 사고방식에 있다. 단언하건데 우리나라는 역사 이래 단 한 차례도 단일민족이었던 때가 없다. 원시 사회부터 남방계와 북방계가 얽혀 한반도에 살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많은 외세의 침략도 민족의 벽을 허문 사례들이었다. 국내에는 베트남계 화산 이씨처럼 스스로 외국계 후손임을 내세우는 집안도 의외로 많다.
경주시만 하더라도 등록된 외국인 수가 2021년 기준 9604명이다. 유감스럽게도 2019년 1만1794명을 정점으로 2020년 1만203명 식으로 외국인 등록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이주해 오는 시대적 흐름은 막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서 올 외국인들이 더 많겠기에 그들에 대한 비뚤어진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선입견의 종류는 그들이 우리보다 미개하다거나 폭력적일 것이라는 오해 등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으로 이민 가거나 취업 나가려고 애썼던 1970년 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선진국으로 나간 한국인들은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과 재산을 가지고 신분을 보장받던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그런 수준이 아니었으면 비자 자체를 받지 못했다. 지금 중·후진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들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보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우수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개념도 정리해볼 만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말은 아이를 낳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말이 될 수 있다. 0.7명은 세 집 중 한 집은 아이를 낳지 않는 수준인데 이는 다시 말해 세 집 중 한집은 아이 없이도 행복하다는 말이다. 부부 둘이서 행복한 게 무슨 문제인가? 우리는 은연중에 ‘전통’이나 ‘일반론’이라는 이름의 자가당착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은 이런 자가당착에서 헤어나야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요즘 TV에 고려 거란 전쟁이 방영 중이다. 여기에 보면 거란이 고려 사람들을 대거 잡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잡아가는 것은 그렇게 해서 국가경쟁력, 노동생산성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제 이런 폭력적인 전쟁 없이도 문호만 개방하면 금방 인구를 늘일 수 있다.
아이 없이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을 추구하면서 세계인에게 열린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면 이게 곧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길 아닐까? 바야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