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말보다 문자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날 것 그대로의 말과는 달리 문자나 글은 필터링 과정을 거칠 수 있어서다. 굳이 그런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성인과 달리 젊은이들은 대화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경향이 있다. 모 유명 여가수는 전화 공포증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콜 포비아(call-phobia)로 알려져 있는 전화 공포증은 일종의 사회 불안장애 증상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이들은 기피한다. 친한 사람이나 가족과의 통화에서도 필요 이상의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텍스트로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한 세상이 된 점은 참으로 다행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개발해 왔고 그 발전은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관계에서 유발되는 불안과 우울증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 코로나로 인해 불가피하게 외로움과 직면해야 했던 시대적 영향도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 결과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SNS 문자 속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번역해야 하는 새로운 형태의 고단함은 일상이 되었다. 목소리와 표정으로도 상대의 심적 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판에 문자라면 더 정교한 맥락적 이해와 뉘앙스에 대한 섬세한 파악이 관건이다. 가령 회사에서 팀장이 메일이나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면 부하직원은 신속하게 반응한다. 그 대표적인 멘트인 “네”, 또는 “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재미있는 분석이 있어 소개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건데, 이름하여 ‘직장인의 넵 지도’다. 상관의 지시에 따른 부하 반응을 네 가지 지표(무례함에서 예의 바름까지, 수동성에서 자발성까지)에 맞추어 분류했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먼저, 상사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문자는 ‘넵넵!’이란다. 가장 예의 바르면서도 자발적이라는 평가다. ‘넵’이 두 번 나올 만큼 열정적이고 의지에 불타고 있는, 준비된 신참 모습이 떠오른다. 수긍과 긍정의 전통적 표현인 ‘네’나 ‘네.’보다 ‘넹’이나 ‘넵’이 더 적극적이고 예의 바르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넵넵’이나 ‘넹넹!’이 지시자 입장에서 최상의 반응이라면 반대로 최악은 “넹;ㅎㅎ”이란다. ‘네’ 라는 긍정에 이응을 붙여 나름 귀엽고 깜찍한 느낌을 주지만, 소위 땀 삐질삐질로 알려진 세미콜론(;)으로 불편한 속내를 살짝이지만 충분히 드러냈다. 그러니 이어지는 ‘ㅎㅎ’도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의미일 공산이 크다. 넵 지도에 달린 댓글도 재미나다.  “엉”이 눈에 띈다. 이 정도면 막 나가자는 건지 아님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인지 감이 안 온다. “눼~눼”도 있다. 대놓고 비꼬는 느낌이랄까. “네? 저요?” MZ 세대의 당돌한 멘트에 충격받았을 상관 모습이 선하다. 일본 회사에서는 ‘절 도장(お辞儀ハンコ)’이라는 게 있다. 한마디로 결재 도장을 직위에 맞는 각도로 찍어야 하는 암묵적 룰이 존재한다. 결재란에 마치 사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듯 도장을 기울여서 찍는 일본 특유의 문화라고. 담당란의 도장은 아예 누워(!) 있고, 그 옆의 계장이 누웠으며 과장을 거쳐 부장 도장이 그나마 덜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사장란은 그럼 어떨까? 부하직원들의 (도장) 인사에 가볍게 목례하듯 아주 살짝궁(!) 기울어진 채 찍혀있다고 한다. 마치 만화 같은 그림이 그려지는데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금융권과 일부 업종에서 겸양의 도장 문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한다. “너무너무 좨송합니다 큰실수를햇내요 앞으로는조심또조심하갯습니다” 철자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인 이 문자는 화가 난 고객한테 보낸 사과 댓글이다. “분명 오이 빼달라 그랬는데 넣을 수 있는 곳은 다 넣어놨네요;; 요청사항 좀 읽어주세요.”라고 불평하는 걸 보니 고객은 별점 1점을 줄 정도로 화가 많이 났다. 나직한 목소리로 몇 번을 반복해 읽어봤지만, 사과 댓글에서는 24년째 분식집을 운영 중이시라는 노부부의 진심이 느껴진다. 철자와 문법조차 엉망진창이라서일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따뜻한 진심에 공명(共鳴)하듯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분식집엘 드나든다고 하니 참 반갑다. 노부부는 또 따뜻한 마음을 올린다. “오늘은조은날갓아요 이럭캐도와주시는분들이만아행복합니다 앞으로도 맛있개해드릴개요 대단히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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