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는 건 간단하다. 먹는 것보다 더 움직이면 된다. 너무 쉽다. 하지만 문제는 움직이는 것보다 우리 인간은 먹는 걸 훨씬 좋아한다는 데 있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까닭에 자연스럽게 또한 당연하게 살은 찐다. 그래서일까, 먹고는 싶고 살은 빼야겠고 그 개미지옥 같은 악순환을 ‘한 방!’에 없애버리는 핵폭탄급 처방에 환호한다. 그게 이번엔 주사제다. 살 빼는 주사.
코앞의 음식은 분과 초 단위로 음미하듯 즐기면서 살은 또 단번에 빼고 싶다. 힘든 운동이나 지루한 다이어트 식단보다는 단기간에 그것도 확실하게 체중을 줄여주는 비법이 나왔다.
원래 당뇨 치료용으로 개발된 건데 이게 웬걸 비만 치료에 탁월하단다. 음식을 먹으면 장(腸)에서 나오는 포만감 호르몬을 모방해 식욕은 줄이고 포만감은 커지게 하는 방식이란다. 일주일에 한 번 맞으면 몇 개월 만에 체중이 15% 이상 줄어든다고 하니 뾰족한 주사에 대한 선입견이 아주 그냥 싹 사라진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Musk)나 세계적인 가수 아델(Adele) 같이 덩치 좋은 셀럽들도 앞다퉈 처방을 받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내년에 출시될 어느 제품의 경우는 무려 23%의 체중감량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이어트 시장의 판도를 확실히 바꿀 게임체인저(game-change)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가령 80kg의 남자 몸에서 18.4kg이 빠져나간다는 말이다. 삼겹살로 치자면 9인분(200g 기준)이 넘는다. 먹는 것의 두 배가 빠진다면 누가 힘들게 땀 흘려가며 운동을 하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상보다 현실 쪽이 우세하다. 한 달에 쓰는 주사값이 100만원이 넘는다. 당연히 보험 적용도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주사를 끊으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비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비만은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는 분위기다. 미국의학협회(AMA)는 비만을 질병으로 선언했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비만을 만성 재발성 질병으로 정의했다. 다른 비전염성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도 비만은 도덕적 타락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병이라고 전했다.
이 모든 담론의 시발점인 식욕, 뭔가를 먹고 싶은 그 욕망에 대한 정의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자, 배가 고프다. 공복 상태다. 위장은 이 상황을 위기로 파악한다. 그러니 뇌한테 SOS를 치기를 배고픔이라는 자극을 전달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신속한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마구 압박을 가하는 거다. 바꿔 말해 배가 고프면 위에서 식욕 촉진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것이 식욕 조절센터인 뇌(의 시상하부)에 도달해 음식을 먹게 만드는 과정이다. 시간이 지나고 배 안에 음식이 적당하거나 가득 찬 상태가 되었다. 그럼 반대로 이젠 촉진 말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나와서 뇌가 숟가락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물과 구별되는 우리 인간만의 모습이 발견된다. 아니, 장 속에 음식의 존재 여부로 배고픔이라는 문제가 해결된다면야 이렇게 간단한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심리적 자극에서 비롯된 배고픔’도 배고픔으로 느끼는 우리다. 마음이 헛헛하고 휑할 때 우린 단 것을 찾는다는 말이다. 남자친구와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기면 괜히 꾸덕꾸덕한 초콜릿케이크를 집어 든다. 우린 육체적 배고픔과 정신적 배고픔을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가 고가의 주사까지 맞는 이유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건, 그 과정에서 세로토닌, 도파민 등 좋은 호르몬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게 핵심이다. 맛있는 음식과 먹음직스러운 플레이팅보다 중요하다. 영양심리학 전문가도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로 불충분한 영양, 불균형한 섭취 패턴을 꼽는다. 영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불행한 것이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앞에선 도파민이, 이 자리가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느낄 때 세로토닌이, 공감과 신뢰의 분위기에 옥시토신이, 음식을 꼭꼭 씹다가 보면 모르핀보다 몇 배 커지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이런 행복과 빠진 살을 등치시키지만 않는다면, 비싼 주사 안 맞고도 우린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다. 살을 무리하게 빼다 보면 없던 주름이 진하게 패인다. 하나의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행복이 희생된다면 그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