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살인 등 인명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고을 수령이 사건에 대한 수사와 검시(檢屍)를 진행해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이웃 고을수령의 2차 검시까지 마무리되면 관찰사는 사건을 종합해 조정에 보고서를 올린다. 이에 형조에서 보고서를 정리해 왕에게 올리면 심리를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1799년(정조 23)에 홍인호(洪仁浩)와 홍의호(洪義浩)가 쓴 판례집 『심리록(審理錄)』을 보면, “상놈 김정삼(金丁三)이 품삯을 독촉하자, 권상만(權尙萬)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발로 차서 다음 날 죽게 하였다. 무신년(1788, 정조12) 7월에 옥사가 이루어졌다”라 기록한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경주부윤은 이병정(李秉鼎. 재임1787.09~1788.08), 경상도관찰사는 김광묵(金光默,1730~1790)이었다. 실록에 실린 사건의 전말을 보면, 1788년(정조 12) 7월 10일에 이웃에 사는 상놈 김정삼이 품삯 10문(文)의 돈을 미처 갚지 않았다고 술김에 욕을 하였고, 욕이 시어머니에게까지 미치자 양녀(良女) 이조이(李召史)의 남편 권상만이 분통을 이기지 못하고 손가락만 한 소등목(蘇燈木)으로 볼기 5도(度:대)를 때렸다.  김정삼이 그날 30리쯤 되는 시장에 가서 만취하여 저녁에 돌아오다가 갑자기 서학(暑瘧:학질)에 걸려 다음날 죽었다. 초검관(初檢官)인 경주부윤 이병정은 장을 맞아 치사(致死)한 것으로, 복검관(覆檢官)인 청하현감 박명순(朴明淳)은 발에 차여 치사한 것으로 실인(實因)을 기록하였다.  이에 시어머니가 검관(檢官)에게 고하기를, “저의 아들이 김정삼을 때린 것은 저를 욕했기 때문이니 대신 상명(償命)하게 해 주십시오”라 하였으나, 검관이 들어주지 않자 이윽고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산 것은 오직 유복자(遺腹子)만을 위해서였는데, 지금 내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권씨 집안은 망하였다. 내가 아들 대신 죽은 자의 목숨을 변상하겠다”라 말하고는 면내(面內)의 방천(防川)에 투신(投身)하였는데 건져 내니 이미 죽어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아들을 살리고자 모친이 투신한 점과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한 애틋한 점을 온 고을의 사민(士民)이 일제히 단자(單子)하여 부윤이 크게 감동하였고, 관찰사에게 논보(論報)하였다, 하지만 감영에서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따르지 않았기에, 권상만의 아내인 이조이가 남편을 석방과 시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하였다. 이 사건은 1788년(정조 12) 9월 4일에 형조가 격쟁인(擊錚人)들의 원정(原情)에 대해 아뢰었는데, 조선시대에 신문고(申聞鼓) 제도가 폐지된 뒤에 원통한 일을 당하여 임금이 지나가는 길에서 꽹과리를 쳐서 하문을 기다리던 격쟁인(擊錚人)이 있었다. 사건의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형조의 보고로 왕이 재결(裁決)을 명하였고, 같은 해 10월 11일에 특별히 사형을 감하고 권상만을 차율(次律:귀양)로 처리하였다. 곽산(郭山:평안북도 정주)에 유배된 권상만은 진주목(晉州牧) 산청현으로 이배되었고, 이후 1790년 6월 24일에 대사면(大赦免)으로 풀려났다. 사건의 판단은 법이 우선이냐? 인륜과 천륜이 우선이냐? 등에 대한 논의가 쟁점이었다. 형조가 죽은 자의 목숨을 권상만의 목숨으로 변상할 것으로 논계(論啓)하였는데, “권상만이 죽은 자의 목숨을 변상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살인자를 죽이는 것은 왕법(王法)을 중시함이고, 열(烈)ㆍ절(節)을 드러내 장려하는 것은 천륜(天倫)을 중시함이다. 왕법은 때에 따라 재량이 있을 수 있으나 천륜은 영원히 변역될 수 없는 것이니, 법은 굽힐 수 있지만, 천륜은 무너뜨릴 수 없다. 권상만은 바로 유복자이다. 권상만의 어미 김씨가 아들이 죽게 된 것을 가슴 아파하여 많은 사람에 대해 맹세하고서 물로 뛰어들어 죽었으니, 그가 죽은 것은 아들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시부모의 제사를 위함이었다. 죽음에 임해서 한 말이 듣는 사람들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어찌 열녀(烈女)요, 절부(節婦)가 아닌가. 한 사건의 범죄에 두 사람이 죽게 된 경우, 전에도 법을 굽힌 적이 있었다. 김씨 같은 열(烈)과 절(節)로도 끝내 살리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들을 살려내지 못하게 된다면 천륜을 중시하는 뜻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조정이 바야흐로 천륜에 대한 교화 펴기를 서두르고 있는 때이니, 권상만을 차율(次律)로 처리하라” 당시 살인은 사형으로 처벌함이 마땅하거늘 왕의 현명한 처분이 놀랍다. 살인자는 죽어야 한다는 것은 왕법을 중시한 것이고, 열부의 절행을 정려(旌閭)하여 장려하는 것은 천륜을 중시한 것이다. 왕법은 때때로 재량이 있을 수 있으나, 천륜은 영원토록 변할 수 없는 것이니 법은 굽힐 수 있지만, 천륜은 무너뜨릴 수 없다. 비록 부모가 자식의 죄를 책임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정에서는 법보다 인륜의 정을 우선으로 판결해 사형에서 유배형으로 감형을 선택하였다. 아마도 경주라는 고을의 전통과 예학의 정신에 걸맞는 처분이 아니었을까 짐짓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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