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눈으로 뒤덮인 러시아를 여행 중이던 어느 한 남작. 어디서 조그만 쇠가 삐죽하고 솟아 있길래 잘됐다 싶어 말고삐를 거기에다 묶었다. 너무 피곤했던 터라 잠시 눈을 붙였다 떠보니, 이 일을 어째? 그 많던 눈은 다 녹았고 말은 교회 꼭대기에 매달려 있더란다. 삐죽한 쇠붙이는 사실 교회 첨탑이었다. 프리드리히 뮌하우젠(Friedrich Munchausen) 남작이 주인공인 동화 《허풍선이 남작의 대모험》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18세기 실제로 독일 군인이자 관료였던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가짜를 사실처럼 과장하거나 말과 행동을 꾸며대는 재주가 있었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병원에도 있다.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 환자라고 불리는 이들 환자는 끊임없는 허풍과 거짓말을 섞는 정신질환자다. 의사에게 자신의 현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왜 자신을 픽션으로 만들까? 한마디로 주목받기 위해서다. 이들이 원하는 건 의사와 환자 관계가 아니다. 가짜를 정말이지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과장하는 이면에는 사람에 대한 인정과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다. 자신의 삶에 타인의 시선이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 며칠 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한국인들의 허풍 문화를 지적했다. 한국인들의 프러포즈 문화인데, 제목부터가 ‘결혼식장까지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값비싼 장애물: 4,500달러의 화려한 프러포즈’다. 결혼식도 아니고 프러포즈에만 자그마치 600만원을 쓴다고? 호텔에다, 그것도 제일 비싼 스위트룸에다, 그 중요한 순간에 어울리는 명품 핸드백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 마련이며 애들 학원비며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조차 꺼리는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라니 믿기지 않을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스위트룸 프러포즈를 받아보고 싶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숙박료가 100만원이 넘는다면 어떨까? 호텔 프러포즈 유행은 코로나 덕분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지는 분석하고 있지만, 본질은 우리의 과시욕과 과한 명품 사랑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명품 소비액은 약 21조원으로 1인당 명품 소비가 세계 1위다. 자동차 한 대 값이 아파트 한 채 값인 명차 롤*로이스사에서 신차 소개를 한국에서 했다고 한다. “한국은 패션, 예술, 건축 분야에서 국제적인 트렌드를 이끌고 있으며, 롤스로이스의 엄격한 품질과 장인정신을 선도하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란다. 롤스로이스모터카 아시아태평양 총괄의 말이다. 그는 이어서 “이전 세대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이번 슈퍼 럭셔리 세단도 그 명성을 이어갈 걸로 확신”한다니 그 확신이 제품인지 대한민국이 ‘호갱’이란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기사에는 실제 커플들의 인터뷰도 싣고 있는데, 남성은 “솔직히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근데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는 첨언에서는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든다. “누구나 호텔 프러포즈를 선호한다. 이는 모든 여성의 꿈”이라는 프러포즈받은 한 여성의 말도 전한다. 기사에서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호텔 프러포즈’ 관련 한국 게시물이 4만건이 넘고, 올라온 사진에는 하나같이 명품 보석과 핸드백이 놓여 있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과한 행동은 분명 남의 시선이 전제되는, 한국의 집단 뮌하우젠 증후군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또 오마카세(おまかせ) 식당에 열광한다고 한다. 대유행이란다. 음식의 선택권이 손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주방장에게 있는, 마치 저가의 회전초밥집이라기보다 주방장이 직접 내어주는 고급 일식 코스 요리 같은 개념이다.  어느 일본 주간지에서도 이런 오마카세 열풍을 “한국 젊은이들의 사치의 상징”이라고 꼬집고 있다. 더 나아가 일본 우익 성향 타블로이드지는 “한국 젊은이들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빈 에*메스 상자를 배경으로 짝퉁 롤*스 손목시계를 찬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건강하지도 않고 어쩌면 치료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내 행복이 페이스북의 ‘엄지척’에 달려 있고 인스타그램의 ‘좋아요’에 여자친구가 프러포즈를 수락하는 세상이라면, 교회 첨탑에 매달린 말처럼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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