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 때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마음이 세운 육체의 시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한 행동을 한 화자의 뉘우침이 절절히 드러나는 한 편의 연시를 본다.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할 수 있는 이런 스토리의 시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 그건 두말할 나위 없이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배면에 깔려 있기에 우리는 이런 시를 신뢰한다. 그렇다고 진정성만이 시의 감동을 유발할 수 있을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 이미 진정성을 가진 시들이 미학적인 깊이가 없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 시의 가장 큰 힘은 툭툭 불거지는 직유의 사용에 있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1연)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2연)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3연) 어떻게 직유를 이렇게 절묘하게 또 시적 상황과 문맥에 맞게 쓰고 있나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직유는 한 장소를 통한 기다림을 수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나’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거나 “어둠 속을 쏘다”녔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거나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기도 했다. 왜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리지 못하고 섣불리 움직여서 ‘그 사람’을 맞이하지 못했을까? 이런 때늦은 후회는 이어지는 깨달음을 통한 인생론적 진술로 이어진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이 엄연한 사실을 손바닥 안에 쥐고 평생의 살아가야 하는 화자를 보는 우리의 마음이라니! 이런 사랑은 곁에 있는 이들, 읽는 이들도 아프고 울컥하게 한다. 연시도 이쯤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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