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난 이유는 순전히 각국 지도자들의 패권 다툼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쟁에서 가장 격전지였던 ‘서부전선’에서 전쟁의 중심에 섰던 프랑스와 독일이 얻은 결과는 더 어처구니없다. 더불어 싸운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독일 세 나라에서 5년 동안 무려 300만 명의 병사들이 죽었지만 고작 참호 한 줄 더 얻고 덜 얻고의 땅을 얻었을 뿐이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2022년/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전쟁을 일으키는 대의명분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반대로 그 전쟁에 실제로 참여하는 군인들에게는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참고로 이 영화는 1930년과 1979년에도 제작된 바 있는 대표적인 반전(反戰)영화다.
이 영화는 많은 전쟁영화에서 보여주는 전쟁 영웅이 한 명도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정치가나 장군도 없고 쏟아지는 적의 총탄을 뚫고 들어가 용감하게 적군을 무찌르는 전사도 없다. 그에 비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갖가지 모습을 참혹하게 보여준다. 참호에서 폭격에 맞아 죽고 무모한 적진 탈환 명령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 죽고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아군의 총에 맞아죽고 행군 중에 포격을 맞아 죽는다. 영화의 조연은 먹을 것을 훔치다 어린아이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주인공은 전쟁이 끝나기 단 일 분도 남기지 않고 적군이 찌른 총검에 찔려 죽는다.
그런가 하면 전쟁을 뒤에서 지휘하는 최고위층들이 맛있는 음식과 최고급 고냑을 마시며 스테이크 조각을 애완견에게 던져 주는 호사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종전이 되었음에도 자신이 허황된 명예를 위해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장군도 등장한다.
요컨대 전쟁은 그 전쟁에 참여하는 모든 군인에게 명예나 자부심과 전혀 상관없는 지옥과 같은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그런 지옥에 내몰려 목숨을 잃은 군인이 무려 1600만 명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일반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수억 명에 이를 것이다. 그들에게는 전쟁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이고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않는 상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최고위층 인사들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쟁을 내려다본다. 그들에게 전쟁은 죽음도 아니고 고통도 아닌, 단순한 권력과 이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후의 일각까지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몬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총살하면서!!
통계에 의하면 6.25 전쟁에서 가장 많은 군인들이 죽은 시기가 ‘휴전 협상 시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무렵 남북을 가로지르는 전선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매일 남북한 병사가 치른 전투에서 엄청난 전사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역시 허망하기 이를 데 없어 남북한 모두 휴전 논의 이전과 이후 얻은 땅은 큰 변화가 없이 매일처럼 이기고 지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마치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서부전선에서 치른 그 참혹한 참호전의 결과가 양 진영 모두 서로 불과 몇 백 미터 정도의 땅을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전쟁은 최고위층들의 권력 놀음으로 인해 그보다 몇만 혹은 몇십만 배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도살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분명히 보여준다. 그게 전쟁의 본질이고 실상인데도 그것을 선동하는 정치가들은 늘 조국이니 민족이니 정의와 자유 등 그럴싸한 명분을 늘어놓는다. 이 영화의 초반부에도 기껏해야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대한 게르만이 파리를 함락해야 하는 이유’를 대의명분으로 내걸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그 위대함에 동참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아주 웃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대부분 전쟁을 주장하는 쪽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풋내기인 반면 전쟁을 겪은 백전노장들은 가급적 전쟁을 피한다는 사실이다. 백전노장들은 전쟁의 부질없음과 참상을 잘 알기 때문이고 신출내기들은 명분과 혈기, 명예 따위에 혈안이 되어 병사와 국민이 당해야 하는 고통과 절망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 시대 대한민국에 전쟁을 함부로 선동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무리가 있다면 제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기 바란다. 그 어떤 명분도 국민의 목숨과 맞바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섣부른 전쟁 선동을 자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