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남산 보리사 석북
서동훈
온세월 내내 수미산 주인되어 그 자락에만 설더니, 서라벌 어느 한 시절 남산 보러 왔다가, 그만 돌아갈 길을 아득히 잊어버렸다.
새벽마다 토함산은 햇뿌리를 머리에 이고 와서 솔잎끝 이슬에 정교히 담아낸 빛살공양을 하더니 그 유리광 세계가 다사롭고 향기로워서 저 평화로운 미소가 지어진 것인가. 해가지고 초승달 호젓이 걸린 밤이면 한아름 세상숙제 받아안고 수리산 손님을 밤새 한숨으로 앓는다. 솔솔 어둠살이 부대끼며 산새들이 밤새 흐느끼는 소리
불국사 일지
중국어 통역 안내원 이승옥(충효동)
96년 여름, 영국의 처칠 수상이 태어난 곳이면서 8대조 말보로 공작이 블랜하임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하사 받았다는 블랜하임 궁전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집안의 외손녀가 궁전의 역사와 일화들을 설명해 주었는데 자기 집안에 대한 자긍심이 나를 매혹시켰다. 영국하면 그 여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직장 동료들과 고적 답사모임을 시작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올해 불국사를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민간 외교관으로서 보람있는 일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방문객은 러시아에서 온 과학자 부부였다. 그들은 그리스 정교를 믿고 있었지만 불교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불국사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진실로 우리 것을 존경해 주었다. 나는 신바람이 나서 더욱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단풍이 한창일 때 독일의 아카펠라 합창단 27명이 공연을 끝내고 들렀을 때다. 영어가 서툴렀지만 석가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내 눈을 내려다 보며 어찌나 열심히 듣던지 입술에 경련이 날 것 같았다. 무려 2시간 반 동안이나 감상할 만큼 불국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안내가 끝난 후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찬사를 보내고는 갑자기 나를 에워싸더니 “보리수”라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주지스님 이하 늘 챙겨주시는 사무실 직원들, 수행에 정진하시는 강원과 선원의 스님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이른 시간부터 묵묵히 맡은 소임에 성실한 보살님들과 처사님들, 음식 솜씨 훌륭한 공양주님들, 일 년간 내 짝지로 근무한 사랑스런 김양, 모두 건강하시고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문화시민... 작은 것부터가 아닐까요.
김미진
일요일 아침, 늦은 단잠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찌직~ 찌직~ 거리며 들리는 투박한 목소리는 다름아닌,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서 보내는 방송이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봉지에 담아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봉지를 아무데나 버리고 가거나 아예, 음식물 쓰레기 통에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넣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쓰레기를 수거하시는 분이 그 걸 보시고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주민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를 바랍니다”
이 방송을 들으면서 아직도 기본적인 시민의식이 부족한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나 자신만 편하면 그만이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공동생활을 어지럽히는 사람이 종종 있음을 경험합니다.
함께 하는 사회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한 두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며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문화 시민으로 가는 길...
내 주위에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일테지요.
노을
정은진(성동동)
예전에 할머니께서
겪으셨다는
그매운 시집살이만큼
붉겠냐만은
열아홉에 시집와
애 다섯 낳고
밤마다 실 자으며
눈물도 잣고
허리 좀 펼만 해서
따로 살림냈더니
고추장이며 김치며
보자기에 싸
머리에 이고
몇십리길 올라오시던
맵던 시어머니가
되려 보고프단 말씀
눈물냄새, 김치냄새
고추장 냄새
감빛으로 붉은빛으로 이르는
저 오묘한 빛깔에서
나도할머니처럼
풋풋한 향내를
느끼고 싶다.
경주시에 바란다
윤지윤(황성동)
경주가 고향인 대학생이다. 같은과에 경주출신의 선배가 있다. 선배는 경주가 고향인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고 홈페이지도 경주의 문화재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아서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큼 그 내용과 정성이 대단하다. 하루는 얘기를 나누다가 선배가 경주의 문화재 관리에 대해 한탄하기 시작했다. 평소 석굴암의 잘못된 보존을 안타까워하고 많이 실망했던 나는 선배의 얘기를 듣고 비단 석굴암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화가 났다. 문화재 발굴에 관한 법중 현 실정에 맞지 않는 것도 많으며 문화재를 방치해 둔 곳도 많다고 한다. 문화재에 대단한 열정과 사랑을 가진 선배는 공무원이 아닌 이상 관여할 수 없으니 공무원이 되어서 바로잡고 싶다고도 했다. 선배는 시청 홈페이지 등에 글도 남겨 보았단다.
문화재에 관한 건의나 요청을 받는 Siter 전화라도 하나 있으면 어떨까. 그냥 의견을 받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타당하고 참신한 의견을 수용하고 시정해나가는 일도 문화재관리라고 생각한다. 안압지·첨성대에 야간 조명이 들어온 것도 얼마전의 일이다. 그간 외국인이나 타지 사람들이 경주에 와서 밤에는 어떤 모양새의 경주를 보았을가. 일찍 끊어지는 버스시간에 시내 상가는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경주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하지만 그 명성에 걸맞는 도시, 다시찾고 싶은 도시가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다시 찾고 싶은 경주를 만드는데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시민모두가 참여하고, 또 그것이 헛되지 않는 그런 경주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