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께 필자가 살고 있는 슬라이고 갈보리 초교(Sligo Carbury national school)에서 서예 강의 요청이 들어 왔다. 6학년 담임교사인 에브릴(Avril West)과의 통화에서 전 학년 25명을 5회에 나눠 가르치기로 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벼루 6개, 붓과 먹, 타블로이드 신문 크기의 화선지를 준비하고 먹물도 미리 갈아서 가져갔다. 지난 6월 11일 월요일 아침, 전교생 미팅이 끝나고 첫 번째 그룹 5명과 보조교사 총 6명이 연습실 책상 앞에 앉았다. 우선 가져간 문방사우(文房四友)에 대해 설명한 후 ‘여러분이 이 시간 가져야 할 것은‘서예에 대한 조그만한 관심과 즐거움(Interest and Fun)’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에 대한 설명과 상형문자인 날일(Sun), 달월(moon), 눈목(eye), 비우(rain) 등이 한문으로 쓰여지게 된 과정을 소개했다. 마침 지난 주말(6월 18일)이 아버지의 날이라 아버지에게 붓글씨로 쓴 편지를 선물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고 그 글을 화선지에 적어 갈 것을 제안하였다. 수업의 최종 결과물을 가져가야하는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부수 효과도 노린 것이다. 수업 진행순서는 우선 눈을 감고 명상을 하게 한 후 붓 잡는 법, 선긋기(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 먹물 사용방법 그리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귀(영어, 한글, 한문)에 대한 연습을 화선지에 옮겨 적는 순서로 30분간 진행되었다. 수업 도중 학생들이 어머니에 해당하는 한글과 한문도 물어와서 샘플을 써줬더니 세 번째 그룹부터 자신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글을 연습하게 했는데 의외로 학생과 교사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줘서 고마웠다. 처음 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들이 지루하게 느끼거나 수업이 산만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예정시간을 10분이나 경과 한 12시 40분 수업을 마치고 담임인 Avril로부터 진심 어린 고마움을 들었다. 지나가던 타 학급 교사가 묻기를 “서예가 한국의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것인가?”라고 물어왔다. 필자는 우리 세대는 학생들이 모두 경험할 정도의 필수과목이었으나 지금은 이러한 전통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서예를 공부한 것은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공보과장으로 근무하던 1993년, 진해에서 가장 조예 깊은 고 춘풍 박을호 선생님(경주 계림초교 졸업하신 분)께 서예를 배우면서부터였다. 1993년은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환태평양해군훈련(RIMPAC)이 하와이 근해에서 진행되었는데, 필자는 공보참모의 자격으로 하와이 진주만 미해군기지에 파견 가게 되었다. 이때 대표단 선물을 준비하던 필자는 훈련전단장에게 춘풍 선생님 서예작품을 선물로 가져가자고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다. 마침 선생님 작품의 표구를 마친 상태라 개인사비를 들여 작품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 내용은 요한복음 13:34절 말씀, 즉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성구 애(愛)자를 크게 쓰고 그 밑에 한글과 영문을 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당시 미 훈련기함인 인디펜던스항모(USS Independence) 항모전단장에게 선물했다. 이후 각국의 훈련함정들이 하와이 진주만에 입항한 후 한국대표단장 일행이 미 해군 기함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첫인사 자리에서 미군 사령관은 자신의 방 한가운데 걸린, 훈련기간 중 필자로부터 받은, 서예작품에 대해 자랑했다고 한다. 그는 ‘전통 서예와 성경의 말씀, 동서양의 만남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며 극찬했단다. 그 칭찬을 직접 들었어야 했던 훈련전단장은 필자의 제안을 거부하고 행남자기를 준비해 갔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결정이 옳았던 셈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필자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내심 으쓱했다. 이제는 한류가 전 세계 대세인 시대다. 서예를 이곳에 소개하면서 서예 역시 우리네 전통으로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울러 잃어버린 서예전통을 우리나라 학생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제안하고 싶다. 아일랜드 축구교실에서 영유아기 어린아이들에게 축구의 기본(FUNdamental)은 재미(FUN)라 말하는 것을 들었다. 기본과 재미에 ‘FUN’이 든 것이 우연이 아닐 듯하다. 스마트폰과 게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집중력을 키우는 글씨 쓰기의 재미(FUN)를 알려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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