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인 2021년 경주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주에 살고 있는 외국인 수는 무려 1만203여명이다. 25만이 무너진 경주인구의 4%가 넘는 많은 수다. 국적별로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국적 순으로 많고 분포상으로 성건동과 외동읍, 동천동 순으로 많이 산다. 신라백화점이 있던 이전 구 중심상가에는 외국인 마켓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이 거리에 가면 마치 베트남 타운이나 외국의 거리를 연상하게 한다.
최근 서울에 사는 친구 한 명이 이 거리를 지나면서 어떤 위압감을 느꼈다며 외국인 거리가 이렇게 방만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규제하고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다. 친구의 말이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고 느낀 데서 출발한 듯해 몹시 불편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그들이 폭력적이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라 알려주면서 거꾸로 우리의 미국 이민사를 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대한민국의 미국 이민사는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숱한 외국인 근로자들과 근본적으로 닮았다. 좀 더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선진국행을 택한 조선 사람들은 미국 농장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경제적 기반을 잡는 과정에서 그들은 끊임없는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다.
이민 2세대는 해방 이후 미국과 교류가 왕성해지면서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이민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미국행은 2000년대 이전까지 한결같았다. 일부 유학한 사람들이 미국의 상류사회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3D 업종,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게 몸을 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차별 이전에 언어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맞닥뜨린 벽이기도 했다. 이들이 겪는 인종차별과 무시는 한국에 있던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고역이었다. 극명한 예로 1992년 일어난 LA흑인폭동사건은 당시 한인들이 백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흑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비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때 미국에 거주했던 한국인들이 과연 백인이나 흑인들이 섣불리 판단했듯 위험하고 한심하고 자기들만 아는 사람들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전반적으로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학력도 좋아서 대부분 대학 나온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이민 갈 수 있는 사람은 하다못해 그 까다로운 ‘미국 비자’라도 받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때 비자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지금 성건동과 외동읍, 경주 전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외국인들의 면면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나라에서는 공부도 할 만큼 하고 나름대로는 앞선 사람들이다. 적어도 이 낯선 나라에 와서 살 마음을 먹었다면 머리도 깼고 용기도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비자를 줄 만큼 보증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이 피부색과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위험한 인물, 더러운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면 그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알고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과거 미국에 들어가 미국 경제를 북돋우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 세계 이민자들의 경우와 흡사한 공헌을 우리나라에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노동 생산 현장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꾸면서 우리 경제가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한 걸음씩 성장해 지금은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교민사회를 만들고 당당히 미국인으로 행세하듯 그들 역시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엿한 대한민국의 주축으로 행세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지금 모습 그대로 맞아들이고 존중한다면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훨씬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걸핏하면 소멸도시 방지를 외치는 지방자치단체라면 정책적으로 더 외국인 근로자들을 잘 대해주어야 한다. 낳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낳아라고 하느니 외국인 근로자들을 우대해서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앞으로 인구정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000년 전 신라의 경주는 외국인들과 원만히 소통하며 국제화 시대를 구가했다. ‘단군 이래 단일민족’이란 허무맹랑한 구태 역사에서 벗어나 훨씬 성숙하고 개방적인 생각으로 외국인 근로자들과 소통한다면 다시 한번 1000년 전 국제도시 경주로 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