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별명은 1/n이다. 이는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학생들이 지어준 것이다. 내가 평소 수업시간에 1/n을 하도 많이 강조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교수는 교수로서 정해진 수업시간에 강의실에 들어가고 그날 강의계획서에 예정된 강의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
물론 수업 준비를 해야 되는데, 과제도 읽고 파워포인트(ppt)도 미리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그 전에 쪽지시험이나 중간고사를 치루었다면 학생들 답안지를 사전에 모두 채점하고 여백에는 잔소리를 잔뜩 적어 놓는다. 뭐를 잘했고, 못했고, 부족하고, 그리고 왜 그런지 등등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이 답안지를 학번 순으로 정리해서 책상 위에 펼쳐 두고 학생들이 다 찾아갈 때까지 잠시 강의실에서 나와서 기다린다. 시험 혹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할 때는 성명은 표기하지 않고 학번 마지막 네 자리를 비밀번호로 기입하게 한다. 논술형 답안지를 채점할 때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방안이다.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는 가져가지 않는다. 학생들도 모두 전화기를 끄도록 되어 있다. 수업시간에 전화기가 울린다거나 통화를 하거나 게임을 하다 들키면 깨 버린다고 윽박지른다. 교수가 정해진 수업시간에 잘 가르쳐야 되듯이 학생들도 수업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집중해야 한다. 교수가 수업을 너무 일찍 시작하거나 너무 일찍 마치거나 너무 길게해서도 안된다. 적절한 시간에 마쳐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화장도 고치고 다른 강의실로 이동, 혹은 식사시간도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것이 1/n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1/n이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밥이나 술을 먹고 한두 사람이 돈을 내면 부담이 크니까 각자 먹은 것은 각자 내고 술의 경우 모든 경비를 합해서 이를 사람 머리 수 대로 나누어서 내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더치 페이(Dutch pay)이다. 네덜란드에서 유래했으나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차츰 정착되어 가고 있다. 어느 모임에나 입만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한두 명은 꼭 있다. 한 번 얻어먹었으면 한 번 사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세 번 얻어먹고 한 번만 사도 친구나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욕은 먹지 않는다.
1/n이란 밥먹고 술 마실 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 일상생활에 골고루 해당된다. 축구 11명, 야구 9명, 농구 5명, 배구 6명, 테니스, 배드민턴 및 탁구 복식 각 2명 등 팀 스포츠에도 각자 위치가 정해져 있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가 재미도 없고 게임에서도 패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 그리고 아이들의 몫이 대체로 정해져 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놀거나 공부할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열심히 자기들에게 주어진 몫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하게 별탈없이 잘 자라주는 것이 아이들의 몫이다.
이러한 역할 담당은 선사시대부터 인간사회에서 관습화 되어 있었다. 이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을 의미한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부인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다. 오륜은『맹자(孟子)』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 가지이다. 부자 사이의 도(道)는 친함에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는 의리에 있고,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젊은이들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밥그릇에 손대지 않고 각자 소속되어 있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서 최소한 자기 밥값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 자기 몫을 해야 하는 바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1/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