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보고 있던 자신의 핸드폰을 내민다. 핸드폰을 받아 든 나는 “이게 출산한 지 7시간 만에 찍은 사진이라고?”하며 따라 고개를 흔든다. 그냥 건성으로 보면 부부가 갓 나은 아기를 안고 있는 평범한 사진이다. 사실은 그 반대다. 아빠는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장남 월리엄 왕자, 아기 엄마는 350년 전통을 깨고 영국 왕실에 입성한 평민 출신의 왕세손비 캐서린 미들턴이다. 강보에 싸여 왕자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새 로열패밀리의 등장에 온 영국 시민들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전통적으로 영국 왕실에서는 왕세자비가 출산을 하면 언론에 모습을 공개해 왔다.
정작 우리의 이목을 끄는 건 왕세자비의 빨간 원피스와 하이힐이다. “아기를 낳은 지 몇 시간 만에 굽 높은 힐을 신는다고? 보통 다리가 퉁퉁 붓지 않나?” 하자 와이프는 “난 내 다리가 무슨 통나무인 줄 알았잖아, 발가락은 또 얼마나 부었던지...” 내가 거들었다. “풀메이컵을 했나 본데, 수유하는 아기엄마들은 보통 ‘쌩얼’ 아냐?” 그러자 와이프는 “아기를 저렇게 안고 있으면 손목도 남아나질 않아” 난 그저 신기해서 한 말인데 와이프는 걱정이 앞서나 보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다. 미국에서는 출산 후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다면 그 다음날 퇴원한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분만 30분이 지나면 산모에게 샤워를 권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와이프 눈이 커진다. 혈액과 체액을 보충하기 위해서 병원에서는 시원한 주스를 제공한다. 심지어 얼음물을 마시기도 한다. 와이프 얼굴이 점점 이상해져 간다. 식사는 평소 먹던 일상식이고, 분만하고 일주일이 지나면 임신 전처럼 일상생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렇게(!) 눈을 부라리는 와이프를 포함한 우리나라 산모들은 어떨까? 우린 예로부터 아기를 낳으면 대문에 삼줄부터 달았다. 새끼줄에 고추와 숯 조각을 끼운 삼줄은 열 달의 임신기간과 해산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산모를 지켰다. 충분한 휴양과 수면, 그리고 알맞은 영양식은 심신 회복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산후 한 달쯤은 누워 있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전문가들도 늘어난 자궁이 임신 전 모양과 크기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3~4주는 걸린다고 한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뿐만 아니라 회음부나 제왕절개한 부위가 아물기 위한 절대 시간이며 퉁퉁 붓고 아픈 가슴이 가라앉는 시간이다.
이게 정상일 것 같은데, 그럼 저 빨간 원피스의 영국 산모는 뭐지? 서양인 산모는 체질적으로 다른 걸까?’ 점점 부풀어 오르던 우리의 궁금증은 어느덧 산후조리원으로 옮겨갔다. 몸을 풀고 금방 돌아다니는 서양 아기엄마가 이상(?)하다. 세상 모든 산모한테 필요할 것 같은 산후조리원이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건 더 이상하다. “뭐야, 그냥 산후조리원이 아니라 ‘K-산후조리원’이었던 거야?”
그래서 조리원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봤다. 호텔급 실내 공간/무료 유방 관리 및 젖몸살 관리/일대일 맞춤 수유 자세와 수유 방법 지도… 홍보문구는 화려하고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산전·후 마사지/만삭 사진+신생아 사진+50일 사진으로 앨범 제작/아빠와 함께 신생아 목욕법 교육/베이비 마사지/우는 아이 달래기… 문득 우리 아들 목욕시키느라 진땀을 빼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비용이 얼마냐고? 서울 강남에 있는 조리원은 기본이 500만원이란다. 방에 개인 정원이 딸려 있고 점심에 랍스터가 나온다는 어느 고급 조리원의 경우 2주에 1,000만원인데도 이미 몇 달 치 예약이 차있단다. 참고로 우리나라 평균 산후조리 비용은 246만원 정도다.
산후조리원이란 용어 자체가 없는 일본, 어느 현직 산부인과 의사는 자연 분만으로 아이를 낳아야, 모유를 먹여야만 ‘좋은 엄마’라는 낙후된 산후 문화를 꼬집는다. 그러면서 산후조리 선진국인 한국을 닮자고 했다.
하지만 자랑스러울 수만은 없는 게 우리는 산모도, 배우자도 장기간의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 남성 육아휴직도, 사회적인 돌봄 인력지원도 없다시피 하다. 이게 현실이다.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24%(2020년 기준)에 불과하다. 예전처럼 친정엄마나 대가족에 근거한 끈끈한 가족문화에 기댈 수도 없다. 그 공백을 상업적으로 영민한 산후조리원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