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2010년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필독서 중에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가 있었다. 필리핀 여성과 국제 결혼한 척추장애인 아버지와 사는 ‘완득이’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다. 2008년에 출간되었는데 7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다. 2011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530만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했다. 이한 감독이 연출하고 유아인과 김윤석이 열연했는데 대단한 블록버스터도 아닌 이 영화가 그만한 흥행을 이룩한 것에는 원작이 주는 탄탄한 구성력과 감동이 바탕되었다. 완득이는 외국인의 귀화에 얽힌 문제와 장애인의 고충, 이들을 함께 안고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당시 고민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그 상황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2022년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약 225만명이다. 등록된 외국인 수가 119만에 이른다. 5140만 인구의 4.4%에 해당하는 많은 수다. 이 숫자에는 외국에서 귀화해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제외된 것이므로 실제로 우리 주변의 외국출신 국민이나 체류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256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약 5%가 장애인이다. 완득이는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이자 영화다. 이 소설과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 정의로운 사회 구현 등의 난제들을 동시에 다루면서도 완벽한 균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완득이 엄마는 소설 중에서 완득이 아버지를 버렸다. 필리핀이 고국인 엄마는 대학까지 나온 엘리트였지만 한국에 오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결혼이민 정책을 선택했고 그 결혼 대상이 완득이 아버지였다. 완득이 아버지가 사이가 멀어진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위해 과감히 홀로 서기를 감행했다. 아들과 함께 남겨진 척추장애인인 아버지는 나이트클럽에서 마술과 쇼로 생업을 이어왔지만 나이트클럽의 부진으로 직장을 잃고 소년 완득이를 남겨둔 채 발달장애인 의형제(삼촌)와 함께 행상을 하며 전국을 떠돈다. 여기에서도 당당하게 스스로 일어서는 장애인의 꿋꿋한 삶이 보인다. 홀로 남겨진 완득이는 다소 거칠고 말썽스럽지만 선생님의 은근한 돌봄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비뚤어지지 않게 이어간다. 그런 완득이가 격투기를 배우며 새로운 삶의 의욕을 불태운다. 선생님은 겉으로는 자기 마음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맞춤식 교육을 시행하는 괴짜다. 밤에는 야학을 겸한 개방교회를 운영하면서 불법 체류에 숨죽이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 영화에는 귀화 외국인과 장애인, 불법 체류, 가난과 교육의 문제 등 듣기만 해도 불편한 난제들이 온통 뒤죽박죽되어 있다. 이들을 하나하나 풀어헤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그런데도 모두가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근본적인 힘은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보는 작가의 시각이다. 완득이 엄마는 단순한 필리핀 노동자가 아니고 ‘알고 보면 니 엄마, 자기 나라에서는 대학까지 나왔다’는 아버지의 뼈있는 말, ‘무슨 가난이 쪽 팔리는 걸 다 알아’라는 선생님의 빈축, 당당히 춤 선생님으로 봉사하는 장애인 아버지와 삼촌, 아버지를 폄하하는 이웃집 아저씨에 과감히 하이킥을 날리는 완득이를 사용해 무수한 테마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간다. 주인공 완득이는 이들 속을 오가며 누구도 받기 힘든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되고 그것을 나눌 줄도 알게 된다. 주옥(珠玉)같다는 표현을 쓴다면 소설 완득이에서 주옥같은 장면은 무수히 많다. 못 사는 나라 출신 외국인도, 등이 굽은 척추장애인도, 말썽 많은 문제아도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의 삶이 하나씩 그 자체로 매듭지어지고 인정받는 모든 순간들이 주옥과 같다. 이번 호 첨성대 사설에서 경주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기사를 올렸다. 이와 연관 지어 외국인 근로자 아닌, 그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들을 대하는 이야기로 완득이를 올렸다. 완득이에 등장하는 삶들이 제각각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지를 보고 싶다면 책이건 영화건 무엇을 봐도 괜찮다는 것을 스포일러 삼아 밝혀둔다. 소설도 좋았고 영화도 좋았던 몇 안 되는 우리 시대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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