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중심상권 르네상스 사업이 올해는 좀 더 강도 높게 실현될 예정이다. 시는 올해만 중심상가 일원에 총사업비 80억원 중 23억 원을 들여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각종 길을 단장하고 먹거리와 볼거리를 집중적으로 배치해 황리단길에 북적이는 관광객을 중심상가까지 끌고 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실제로 중심상가가 발전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초기 반짝 상승하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그게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런 시도는 이미 봉황로에 대한 수 차례 정비사업에서 드러난 바 있다. 온갖 치장을 하고 조명을 설치해도 효과는 거의 없었다. 정책 입안가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가 무엇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모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성공하는 예가 없잖아 있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어마어마한 곳을 만들어 누구나 당연히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오랜 기간의 마케팅으로 꾸준하게 사람들이 모이는 ‘남이섬’ 같은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곳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요건이 필요하다. 반드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은 관광객이 아니고 그곳에 사는 ‘주민’이다. 주민이 살고 있으면서 그곳이 일반 세상과 좀 다른 독특한 문화나 풍경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요소가 ‘관광’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서울의 인사동이나 북촌이다. 인사동은 골동품과 미술로 대변되는 서울의 가장 오랜 문화거리다. 그 자체로 사람들이 모일 만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사동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산다는 사실이다. 인사동 주변 마을이 과거 서울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았던 종로다. 현대식 개발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다 밀려 나갔고 대신 고층을 동반한 오피스 타운이 형성되었다. 주민들이 밀려나간 대신 그보다 수십 배 늘어난 엄청난 수의 활동 인구가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인사동의 호황이 유지될 수 있었다. 북촌 역시 90년대 개발 일방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더 이상 고풍이 망가져서는 안 된다’는 자각으로 그 당시의 한옥과 양옥들을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그 시대의 특징이 유지된 곳이다. 당연히 그곳에는 밤낮없이 그곳을 지키며 산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집과 그 주변의 풍광을 지키고 살았을 뿐인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관광객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심지어 하도 관광객들이 들끓다 보니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버리는 투어리피케이션의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경주의 중심상가 주변은 허허벌판이 된 지 오래다. 30년 전 중심상가를 지지하던 황오동, 황남동. 인교동, 사정동, 성건동 일대는 경주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건동을 제외하면 모든 곳이 다 유적발굴 후 꽃밭으로 바뀌었다. 성건동마저 젊은 세대는 다 빠져나가고 노인들 위주의 동네로 전락했다. 주변 인구가 급감한 중심상가는 급격히 쇠락했고 여하한 단장으로도 회복하지 못했다. 황리단길이 새롭게 각광받은 것은 그곳이 북촌처럼 전통 한옥이 보존되었고 거기에 현대의 변화도 스며 있는 데다 그나마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 자체로는 서울의 경리단길이 반짝했다 시든 것처럼 쉬 사라질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황리단길이 점차 팽창하면서 새 한옥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또 다른 경관을 형성, 지금까지 번영하고 있다. 요컨대 이 역시 사람들이 지금 그곳에 살거나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상가가 옛 모습으로 회복하려면 볼거리를 늘이기보다 주변의 고정 인구나 활동성 인구를 늘이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비어가는 상가들을 정비해 문화예술인들에게 저렴하게 장기 대여한다거나 상설 공연장을 지어 꾸준히 극예술을 활성화 시키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발굴이 끝나 꽃밭이 된 대릉원 담장 건너편 넓은 터를 한옥촌으로 바꾸어 상주인구를 늘이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이렇게 인구가 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가도 활성화될 것이고 상가가 활성화되면 관광객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다. 또 그쯤 되면 굳이 관광객이 없어도 상가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관광객이 없어도 원주민이 잘 되면 그만 아닌가? 중심상가 활성화를 위해서 경주시 당국의 보다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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