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났다. 설날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다. 장난감 파는 곳이면 아이들은 고가의 장난감을 고르느라 분주하고 한 발짝 물러선 곳에는 물주가 확실한 조부모가 서 계신다. 덕택에 계산하는 줄이 길게 늘어날수록 가게 주인도 신이 났다. 장난감 가게를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신났다. 두둑한 세뱃돈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돈을 벌고 돈을 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도 있으니 돈을 벌고 쓰는 일은 자급자족을 벗어난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아주 큰 고민거리였음을 능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들리는 것이라곤 누가 코인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 땅을 사고, 팔아서 얼마를 벌었다, 집을 샀는데 그게 얼마나 올랐다. 이게 고작이다. 돈의 크기에 대한 개념도 없고 가치에 대한 고심도 없고, 그러니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만 어디서 주워 들어온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세대까지는 금융 공부를 안 해도 어찌어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평생직장 개념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금융을 모르면, 경제를 모르면, 돈을 모르면’ 우리 아이들은 중산층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나는 못 배웠지만, 우리 아이들은 알아야 한다. 교육열 하면 대한민국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경제교육, 금융교육, 돈 교육은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수능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교육이다. 대학입시보다 중요한 것이 돈 교육이다. 왜? 대학은 선택이지만 돈은 삶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엄마는, 아줌마는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시지 못했다. 글도 숫자도 살면서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알아가셨다. 그런 엄마가 내게는 아주 훌륭한 경제 선생님이셨다. 초등학교 저학년(아마 아홉 살) 때 기억이다. 당시에 아주 큰 돈인 만오천원을 내 손에 쥐여주시면서 혼자 가서 신발을 사 오라고 하셨다. 생전 처음 버스를 타고 홀로 번화가에 갔다. 제주도 중앙로, 동문시장 현대약국 골목은 보세 신발 가게와 모든 신발 브랜드 가게가 몰린 곳이다. 어렵지 않게 찾아가서 번듯한 브랜드 가게에 들어갔다. 그러나 모두 이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살 수가 없었다. 한 곳에서 제일 저렴한 것을 찾았지만 그것도 만팔천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보세 신발가게로 들어갔다. 많은 신발 중에서 비교적 비싼, 만이천원에 불빛이 반짝이는 운동화를 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거스름돈을 드렸다. 그랬더니 엄마는 “더 비싼 운동화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네가 돈을 남겼으니 그 돈은 네 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진 거금이었다. 아빠가 기분 좋으실 때 주시던 심부름 값도 오백원을 넘긴 적이 없었다. 천원이면 과자를 여러 개 살 수 있는데, 삼천원이나 생겼다. 그때 나는 불빛이 빛나는 운동화를 산 나 자신을 원망했다. 일반 운동화를 샀다면 오천원, 아니 아저씨가 깎아주실 테니 육천원이남았을 수도 있었다. 사십 년 전 육천원은 지금 얼마일까? 초등학생이라면 슬슬 경제교육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사고 싶은 고가의 물건들과 일상의 지출에 대한 개념을 하나둘 잡아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일주일마다 용돈을 받는다. 용돈을 받으면 저축, 기부, 용돈으로 나눠서 돈을 용도에 따라 봉투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장난감이나 필요한 것은 각자의 용돈에서 지출한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우유를 갖고 오라고 하고, 아이들이 우유를 갖고 올 때 무엇을 살폈는지 묻는다. 유통기한(최근 소비기한으로 바뀌었다)만 체크하고 온 아이에게 가격이 얼마였는지 묻는다. 우리가 이번에 마트에서 사야 할 것들과 남은 식비를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이 추가로 사고 싶은 간식을 이야기할 때면 그것이 먹고 싶은 이유, 성분이 무엇인지(동생이 먹어도 되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가격이 얼마인지 묻는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진행하면서 아이들은 성장했다. 엊그제 마트에 갔는데 필요한 것들만 사고 나오는 길에 슬쩍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천원 하는 젤리 세 개를 건넸다. ‘이거 어때?’라고 물었는데, 아들이 ‘어머니, 감사합니다. 엄마가 이거 사주신대’하고 소리 지르며 동생들에게 뛰어갔다. 용돈교육을 하면 아이들은 돈의 가치, 크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함부로 고가의 장난감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아빠의 월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알게 되고 아빠에 대한 존경심도, 그 돈을 잘 관리하는 엄마의(또는 아빠) 능력도 왜 필요한 것인지 아이들은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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