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을 지나 창건 당시의 가람 구역인 대적광전 쪽으로 가지 말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면 1980년대에 새로 조성한 삼천불전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삼천불전 영역은 대적광전과는 대조적으로 전반적으로 화사한 느낌이 든다. 중국 송나라 때 이방(李昉)이 지은 ‘태평어람(太平御覽)’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제나라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처녀에게 두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그런데 동쪽 집의 총각은 인물은 볼 것이 없으나 부잣집 아들이었고, 서쪽 집 총각은 인물은 뛰어나지만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워진 처녀의 부모는 본인의 생각을 알아보자며 처녀에게 물었다. “어느 쪽으로 정하기가 쉽지 않구나. 네 뜻은 어떠하냐? 만일 동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고, 서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어라” 그러자 딸은 망설이지도 않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깜짝 놀란 부모가 그 이유를 묻자, 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곳 기림사에서 사찰의 유래와 창건에 따른 일화는 대적광전 영역에서, 여러 부처님과 관음보살, 시왕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삼천불전 쪽을 찾아야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가씨의 마음이라면 기림사 어느 한쪽이 아닌 전체를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 조성한 이 불전 영역은 삼천불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관음전, 서쪽으로는 삼성각과 명부전이 있고 그 앞쪽으로 화정당과 해행당이 있다.
이 가람 구역은 예사롭지가 않다. 온갖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언뜻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극락이 아닐까 하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중심전각이 미타전 또는 극락전이 아니고 삼천불전이니 극락을 염두에 두고 조성한 정원은 아닐 것이다. 이들 꽃 중에는 한 나무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핀다는 오색화도 있으리라. 『기림사 사적기』에 의하면 오종수로 기른 이 꽃을 일타오색화(一朶五色花)라고 한다는데 경내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 정원을 인위적으로 가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더욱 정감이 간다. 삼천불전은 1990년에 지어진 전각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건평이 108평이나 된다. 해남 대흥사의 유명한 선승인 초의(草衣)선사의 스승이었던 완호(玩虎)스님이 1811년 해남 두륜산 대흥사(옛 이름은 대둔사) 천불전의 중건을 시작하면서 이곳 기림사에서 경주 불석산의 옥석(玉石)으로 천불을 조각하도록 하여, 순조 18년(1818)에 대흥사 천불전에 모시고, 이후 기림사 삼천불전에 이와 동일하게 옥석으로 만든 삼천불을 모셨다고 한다. 광대무변한 세계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 한다. 삼천대천세계에 가피(加被)의 충만함으로 상주하시는 삼천불은 광대한 공간적 개념뿐만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을 초월한 시방삼세(十方三世)에 편재하시는 부처님이다. 이는 대승불교의 다불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과거천불은 과거에 장엄하였던 천불로 이미 성불한 부처, 현재천불은 현겁(賢劫) 중에 성불한 1천의 부처, 미래천불은 성수겁 때에 나타날 부처라고 한다.
불경 중에는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참회하여 죄과를 용서받는다거나 부처의 이름을 외우면 극락왕생한다는 내용의 불명경(佛名經)류의 경전이 다수 있는데‚ 『삼천불명경(三千佛名經)』은 그중에서도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 이름을 각각 정리하여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삼천불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를 하면 과거에도 수많은 부처님이 계셨고, 지금도 누구나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미래에도 많은 부처님이 탄생할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