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잠늠골 3층석탑에서의 상념 11월 12일 오후 3시경. 내리는 가랑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산연구소 문화재답사팀 일행으로 2002년도에 복원된 잠늠골 3층 석탑에 도착하였다. 늠비봉 5층탑이나 용장사 3층탑에 비하여 비록 아담한 사이즈이지만, 잠늠골 3층 석탑은 가까이서 보는 것 보다 나중에 하산하는 길에 비파골 골짜기에서 올려다 보면 산과 하나로 융화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산 전체가 하늘에 닿아 탑으로 승화(昇華)되는 큰 감격을 준다. 문화재 답사를 다녀 보면 탑이란게 그 놓인 위치에 따라 이상하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만약에 이 잠늠골 3층석탑을 경주박물관 경내 잔디밭에 옮겨 놓는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이렇게 끌지는 못할 것이다. 잠늠골 3층 석탑의 왼쪽 약수곡 골짜기는 소나무 숲과 어울린 단풍잎들이 울긋불긋하지만, 오른쪽 골짜기엔 나무라곤 보이지 않고 온통 바위덩어리 속에 군데 군데 썩어가는 나무 덩어리들이 뿐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들을! 1997년 남산산불 때 따버린 소나무들이 밑둥치까지 절단되는 대수술을 받고 아직까지도 방치되어 있다. 언제쯤 다시 푸르른 남산을 볼 수가 있을까? 조심스레 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군데군데 새로 조림한 아기 소나무 묘목들이 이제 겨우 키가 20센티미터에서 조금 큰 것은 30센티미터 정도 자라고 있었다. 불무사터와 석가사터 그리고 비파암을 보려고 산 능선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가, 군데 군데 자세히 살펴보면 능선에 곳곳에 작은 석축들을 만난다. 절터는 아니겠고, 유심히 살펴 보노라니 남산연구소 김구석소장 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남산 사방 사업시 만들었던 석축들입니다.” 아-아! 그렇지. 일제시대나 해방 직후엔 남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방방곡곡 거의 모든 산들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97년 남산산불이 났을 때, 일각에서는 수 백년 동안 가꾸어 온 남산의 산림을 어떻게 복구하느냐! 아마 1백년은 더 걸릴것이라고 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은 삼릉 숲 근처와 몇 몇 곳의 1백년 정도된 소나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무들은 60-70년대 산림녹화사업 때 조림한 나무들이다. 수 많은 불상과 탑 그리고 절터를 남겼던 신라인을 뒤로하고, 근대 역사에 남산과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통일전을 세우고, 남산 순환도로를 만들고, 남산 정기로 죄인들을 순화시키는 남산교도소를 짓게 한 분도 박정희 대통령이셨다. 남산 골짜기마다 능선마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를 심게 한 사람도 그 분이다. 60-70년대 사방사업은 전 국가적인 사업이었고, 5.16 직후에 사방사업 격려차 경주를 방문한 박정희 장군이 직접 심은 나무가 지금도 있다. 경주시 외동읍 냉천2리 새터마을 남동쪽 어귀에 ‘히말라야 시다’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번 매미 태풍에 넘어졌으나 주민들이 다시 일으켜 심고 가지치기를 해 놓았다. 그 옆의 작은 표석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62.10.21’이라고 되어있다. 아마 역대 대통령 중에 남산에 가장 큰 애정을 쏟은 분이 박대통령이셨다. 남산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의 저력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신라인의 종말을 고하게 된 슬픈 포석정도 남산 품에 잠들어 있다. 통일전을 세우고 화랑정신을 앞세워 국론을 통일하고, 나아가 남북통일을 이룩하려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산림녹화 치적의 숨결이 남산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나만이 할 수 있다’ 과욕으로 종신대통령을 꿈꾸었던 박대통령의 야망을 남산의 부처님들은 결코 허용치 않았나보다. 잠늘골 3층 석탑 주위의 바윗돌에 앉아 상념에 잠겨보라. 나무도 사람도, 화재에 의하든 아니면 제 수명을 다하든, 결국은 유한한 삶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에 비하면 천 년 동안 남산을 지켜온 바위부처님은 영원할 삶을 가진다. 97년 남산산불의 상처를 잘 치료하고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릉 등 몇 곳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냉정히 깨닫고 지금부터 대체림을 키울 때다. 작은 나무야 다시 심으면 곧 자라지만, 큰 나무를 다시 키울려면 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경주시내 사적지 곳곳에 있는 빽빽한 고목들이 지금은 아름답지만 수 십년 뒤 집단적으로 운명을 다할 것을 생각하면 그 삭막함이야 상상하기조차 끔직하다. 긴 안목으로 서서히 대체림을 키워 가야 하지 않을까? 숲이 울창한 삼능계곡을 오르는 것보다는, 97년 남산산불의 상처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잠늠골 3층석탑과 비파바위, 불무사지, 석가사지, 그리고 폐탑터를 둘러보는 문화재 답사코스가 더 고귀하고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생각케하고 깨닫게 한다. 사람과 나무의 유한한 삶. 그러나 무한한 생명의 바위부처님들. 그래서 신라인들도 그 영원한 불심을 꿈꾸며 이 남산 바위에다 수 많은 부처와 탑을 남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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