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이른 무더위와 반복되는 폭우가 이어졌다. 불안정한 날씨 때문에 작업실의 여러 재료가 걱정되었다. 특히 온습도에 민감한 먹의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물리적인 외부 충격이 없어도 먹은 온도가 높고 습도가 낮은 곳, 짧은 시간에 습도의 변화가 나는 곳, 갑자기 환경이 바뀐 곳에서 파손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끼던 송연먹(소나무로 만든 먹) 중 하나가 위 아래로 살짝 금이 가있었다. 후회와 안타까움의 마음으로 먹을 정성스럽게 천으로 싸고 유물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는 오동나무 보관함에 두었다. 보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살펴본 먹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 사이 먹에 난 금이 흐릿해지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었다. 사람의 몸이 상처를 회복하는 것처럼 먹 또한 상처를 회복한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예로부터 ‘먹은 살아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먹은 꿈틀꿈틀 생명력을 갖고 살아있는 것인가? 먹은 몸 전체에 공기구멍이 있다. 제조할 때 생긴 이 미세한 구멍들로 호흡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받는다. 습기가 많은 날에는 구멍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습기가 적은 날에는 수분을 방출한다. 사람이 공기로 숨을 쉬듯 먹은 수분으로 호흡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먹의 주원료인 아교가 변화하면서 먹의 상태가 변한다. 아교는 동물성 단백질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먹의 또 다른 주원료인 그을음과 자연적으로 융합되면서 변화한다. 와인의 포도 당분이 효모를 만나면서 알코올로 변화하는 것처럼, 먹도 그을음이 아교와 만나 화학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먹도 와인과 위스키처럼 숙성된다고 할 수 있다. ‘(양질의 재료로 만든) 먹은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숙성된 먹은 색이 깊어지고, 입체감과 투명감 역시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먹을 만든 후 오랜 기간 묵힌 후 사용했다. 200년 이상 먹을 만들어 온 일본의 기업, 묵운당(墨運堂)의 사장이었던 마쓰이 시게오(松井茂雄)는 먹의 성장 변화를 사람의 일생에 비유했다. 그는 『묵운당묵보 백선묵 상권(墨運堂墨譜 百選墨 上卷)』에서 제조 후 2~3년이 된 먹을 유년기라 표현했고, 6~7년이 되면 소년기, 8~15년은 청년기, 16년 이상 되어야 장년기,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묵힌 먹을 노년기로 구분했다. 오랫동안 먹을 만들어왔던 마쓰이 시게오는 어느 정도 숙성기를 거쳐야 먹다운 먹이 된다고 본 것이다. 좋은 먹이 환경 변화를 거치며 끝까지 사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주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사물과 사용자와의 관계가 어디 먹뿐이겠는가.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표현이 있듯 먹을 친구로 생각하며 아끼는 사용자를 만난다면, 그 먹은 쓰는 이의 학문 혹은 예술적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거듭날 수 있다. 반면, 먹을 함부로 대하고 도구적 관계만을 맺는다면 그 먹은 청년이 되기 전에 숨을 멎을 수도 있다. 동아시아에서 먹은 이천여년 동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서사(書寫) 도구의 변화에 따라 최근 한 세기 동안 먹은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다. 당연히 전통 방식으로 먹을 만드는 곳도 거의 사라졌고, 값싼 원료로 제작한 저가의 먹들로 품질도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먹이 살아있다거나 먹을 묵힌다는 말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고, 먹과의 지기(知己)관계는 지나치게 낭만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서예가나 작가들이 먹을 써서 계속해서 작품을 창작하는 한, 본연의 재료인 먹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먹의 숙명은 유물처럼 고이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벼루에 갈려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먹의 일생 동안, 주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먹은 물질적으로 소멸하더라도 글씨나 예술작품으로 남아 또 다른 형태로 생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사라졌지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물, 먹에서 시작한 이런 생각은 필자와 같은 예술가들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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