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경주 유림(儒林)에 소속된 분들과 만날 일이 더러 있었다. 경주의 정신문화의 산실인 유림(儒林)에 관계된 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교육학을 전공한 필자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라 여겨진다. 그런 인연으로 경주향교 선비학교에서 역사 이야기 수업을 질문교육으로 재단장해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는 기회도 생겼다. 유림의 회원이신 분들은 일단은 원로이시고 인생으로 보면 대선배님이시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몇 시간이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경주 이야기를 듣는 행운도 누린다. 그야말로 진짜 경주 이야기이다. 삶 속에서 각색이 안된 채 면면히 유지되는 우리의 전통교육문화이자 역사다. 그야말로 생생히 살아있는 경주 이야기라 펄떡펄떡 뛰는 느낌이다. 경주사람에게 조차 경주는 객관적인 도시이다. 어릴 적부터 교과서에서, 책을 통해 경주를 배운다. 이런 경주이야기는 좀 무미건조하다. 논쟁이 되는 부분들도 있고, 왜곡된 채로 수용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되어 뻔하기(?)까지 하다. 경주향교의 전) 전교님도 만나서 아직도 건재하게 현역 이상의 활약을 하고 계셔서 힘을 얻기도 하고, 아직도 경주에 건재한 유림에 대한 소식도 들을 수 있어서 새로웠다. 또한 서악서원을 지키고 계신 최병환 유사님은 적벽가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시기도 하고, 경주 사마소를 중심을 모이는 유림의 역사에 대해서도 구수하게 들려주셨다. 또한 전국의 명문가의 종손들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신다. 얼마 전에는 내남 신리 오우당에서 90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계신 오우당 문중 14대 주손인 시인 남계 이창희 선생님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의 부친과 조부의 이야기만으로도 경주의 살아있는 한 역사이어서 오우당 툇마루에서 무척 기쁘게 이야기를 듣고 왔다. 동경열전에는 오우당에 얽힌 다섯 형제의 지극한 효성과 우애가 실려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6월에는 경주 유림의 최고 원로들이 모이신 정풍회에서 퇴계 선생의 가학(家學)과 가서(家書)라는 주제로 강의 요청도 받아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다녀오는 기회도 있었다. 아프리카에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속담이 있다. 중세까지 노인의 지성과 경험과 지혜는 마땅히 후세사람들이 배워야 할 스승으로 모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노인이라는 단어조차 그분들의 인생을 폄하하는 단어로 쓰고 있는 듯하다. 퇴계 선생의 가학과 가서를 통해 본 가정교육이 그날 강의의 주제였지만 정풍회의 어른들을 만난다는 것은 마치 퇴계 선생을 만나는 것 같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노인이 도서관 하나라면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자주 만나야, 그분의 일생과 지식과 경험과 지혜를 다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또 노인들은 평생 일구어 온 논밭의 결실을 어떻게 차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은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학자로, 교사로, 과학자로, 사업가로 살아온 평생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유아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을 쓰고, 교육한다고 한다. 퇴계 선생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선조의 부름을 마다하고 도산으로 내려온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퇴계 가의 가학(家學)은 그런 학문과 가풍의 전통을 말한다. 퇴계의 아들과 손자를 비롯해 친손들과 외손들, 처가 식구들까지 대부분 퇴계의 문하생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날 경주 정풍회에 40여분 앉아계신 자리는 도서관 40개가 있는 곳, 마치 전설속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한가운데 있는 듯 가슴이 벅찼다. 현재 유림 소속 유학자들은 연세가 대부분 70이 넘으셨다. 천자문을 5세 때 떼는 방법을 알고 계시고 지금도 한문 원전을 줄줄이 외우고 인용하시고 풀이하신다. 어마어마한 기억력으로 선대의 집안 역사 즉 유림의 역사이자 경주의 역사를 그대로 꿰고 계신다. 현시대의 서양학 혹은 동양학 전공자들이나 학자 중에 저 정도의 기억력으로 줄줄 외면서 이야기를 풀어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날 정풍회 강의 때 탈무드 원전 1권을 가지고 갔다. 타블로이드 양장판이고 한 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운 책이다. 저 탈무드 72권을 유대인들은 아직도 유아들부터 읽고 외우고 토론한다고 전해드렸다. 다들 놀라시는 눈치였다. 그들의 공부법은 안식일을 통해 한자리에 앉아서 조부로부터 부모 세대 그리고 자녀들에게 전수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통 교육법을 체득해서 아는 세대들이 대부분 70이상 되신 노인 세대들이다. 방대한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사라지면 다시는 찾지 못한다. 왕경도시를 복원하는 것보다 이 어르신들의 정신문화와 공부법을 전수받는 것이 시급하다. 너무나 아까운 우리의 공부법이 고리타분하고 구세대적이라고 버려질 때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 방법으로 배우고 세계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선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 교육에 그 답이 있는데 왜 유대 교육이나 다른 나라의 교육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할까? 유림의 어르신들을 만나고 반가운 마음과 또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적어본다. 이 논단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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