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루를 돌아 절 마당에 이르면 대적광전을 중심에 두고, 왼쪽에 약사전, 동쪽에는 목탑지, 서쪽에는 응진전, 앞쪽에 진남루가 사각의 성지를 이루고 있고, 뜰에는 삼층석탑과 새로 조성한 석등이 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이다. 전면은 배흘림기둥에 화려한 꽃창살문을 달았는데 단청이 퇴색하여 고색창연하고 공포에 조각이 많이 들어가 화려하며 내부는 넓고 장엄하다. 수리할 때도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아 예전 모습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 느닷없이 마누라가 예뻐 보이면 치매기가 있고, 단풍이 눈에 성큼 들면 늙었다는 징조라고 한다. 단청이 퇴색된 건물을 보고 오히려 정감을 느끼게 되는 필자는 치매 전조인가, 늙었다는 징조인가??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적(寂)’은 번뇌를 멸한 고요한 진리의 세계 즉 니르바나(nirvana)를 의미한다. 한자로는 ‘열반(涅槃)’이라고 하는데 ‘니르(nir)’는 ‘꺼지다’이고 ‘바나(vana)’는 ‘불’이다. ‘니르바나’는 ‘번뇌의 불이 꺼지다’의 뜻으로 탐욕[탐(貪)]과 분노[진(嗔)], 어리석음[치(痴)] 등 온갖 번뇌가 다 소멸된 궁극적인 경지를 가리킨다. 즉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져 버린 평온한 마음 상태, 번뇌의 불꽃이 모두 꺼져버린 고요한 마음 상태, 욕망과 괴로움이 모두 소멸된 정신 상태가 니르바나[열반(涅槃)]이다. 대적광전의 ‘광(光)’은 그 세계에서 나오는 참된 지혜가 온 우주를 찬란하게 비춘다는 의미이다. 내부에는 삼존의 소조 불상을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좌우의 불상을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라고도 한다. 약사불이라면 지물인 약합이 없고 또 이 전각 바로 동쪽에 약사전이 별도로 있어 불상이 중복된다. 노사나불의 경우 보관을 쓰고 있거나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위로 올린 형태의 수인으로 표현하는데 이곳에는 좌우 불상이 꼭 같은 수인을 하고 있다. 삼존불상은 몸집은 비대하나 머리가 작아서, 완성도는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후불탱화인 비로자나삼불회도(毘盧遮那三佛會圖)는 전체적으로 황토색의 바탕에 홍색, 녹색, 노란색 등이 조화를 이루어 은은한 느낌이 든다. 화면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가면서 위상이 높은 상에서 낮은 상으로 배치하고, 인물의 표현도 점점 작아지게 하여, 원근감과 입체적인 공간감을 살리고 있다. 이 탱화는 천오(天悟)와 임한(任閑) 등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화승(畵僧)들이 참여하여 숙종 44년(1718)에 그린 것이다. 이 대적광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8차례나 다시 지어졌다. 1997년 해체 공사 때 종도리에서 4종의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에 의하면 1629년에 제5차 중수가 있었고, 1755년에 개조 중수가 있었고, 1785년에 6차 중창이 있었으며, 1978년에 제7차 중수가 있었다. 최근 1997년에는 정부의 문화재 수리 비용으로 제8차 완전 해체 수리가 이루어졌다. 대적광전은 불전 자체도 보물이고,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후불탱화인 비로자나삼불회도도 보물이다. 그래서 이 전각은 기림사 내에서도 가장 문화재를 많이 보존하고 있는 불전이다. 대적광전에는 이외에도 보물로 지정된 비로자나불의 복장물(腹藏物)이 발견되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무려 700여 년 동안 발행된 대방광불화엄경』을 포함한 71권의 전적과 부처님 진신사리 4과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1986년 9월 대적광전에 들어와 이 유물을 훔쳐 도망치는 절도범들을 잡아서 겨우 되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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