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Tiger Woods)의 힘찬 스윙을 찍은 사진이다. 잘 알다시피 그는 PGA 통상 82번의 우승을 거머쥔, 현역 중 최고의 골프 선수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기에 갤러리들은 그의 힘겨운 스윙에 온통 집중하고 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역사적인 순간을 두 손으로 곱게 쥐어든 핸드폰으로 기록 중이다. 미국 PGA 챔피언십 1번 홀, 우즈의 세컨드 샷 상황. 우즈만큼이나 긴장한 갤러리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뜯어보다가 우즈의 왼쪽 뒤에 있던 사람에 이르자 피식 하고 웃음이 터진다. 파란색 모자를 쓴 그 사람만 핸드폰 대신 캔 맥주를 들고 있다. 맥주 사이즈(!)도 모양(!)도, 두 손으로 고이 들고 있는 모양새(!)마저 똑같아 여차하면 놓치기 쉽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처럼 쉽게 지나친 장면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윌리를 찾았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더라, 중요한 장면을 두 눈 대신 핸드폰에 담기 시작한 지가... 내 눈에 그는 존재 자체로 세상에다 웅변하고 있는 철학자였다. 눈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의 눈과 그의 태도가 그걸 증명해준다. 아니 맨눈으로 대상을 보는 게 뭐가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핸드폰이 눈의 기능을 대신하는 세상이다.
‘까만 직사각형’이 인류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평범했던 일상이 더 이상 그렇지 않고 비범한 그 무엇이 되어버린 세월이 야속해서랄까. 핸드폰을 움켜쥐기 전의 그 견고했던 우리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그 상실감과 좌절감에, 그는 맥주를 든 철학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좀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그저 내 생각이 로맨틱해졌다고 치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은 한 장면만을 기록할 뿐이다. 동영상이라면 이어진 장면을 기억할 테고. 반면에 눈이 담은 기억은 언젠가는 흐릿해질 테지만, 인식 주체와 대상 사이 그 어떠한 개입도 없이 주체와 대상이 날 것 그대로 부딪치는 그 싱싱함이 살아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타이거 우즈는 우상(idol)이다. 거의 BTS이고 ‘나훈아 오빠’다. 나를 홀라당 잊어버리고 온전히 몰입하는 대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겸제의 ‘인왕제색도’도 마찬가지로 소위 걸작(masterpiece)이다. 걸작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잊어버릴 만큼 시선을 붙잡아놓는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시공을 넘나들며 사랑받아 온 걸작을 감상하기 위해, 아니 소유하기 위해 예외 없이 우리는 핸드폰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가? 작품 모나리자가 걸작이라면 그걸 바라보는 우리도 걸작이라는 사실 말이다. 세상에는 성인(聖人)들이 많다. 하지만 그 어떤 성인도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헤어스타일 독특한 그저 평범해 보이는 어느 인도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건, 그를 성인으로 볼 줄 아는 ‘눈 밝은’ 제자들에 의해서다. 스승을 뛰어나게 하는 것은 ‘스승의 눈’을 가진 제자 때문이란 말이다. 모나리자 작품만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눈을 가진 우리도 대단하듯, 타이거 우즈만큼이나 우즈의 눈을 한 갤러리도 주인공이란 말이다.
젊은 친구들 말마따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런 상황에 뱀 다리 하나를 붙이자면, 그 갤러리가 들고 있던 맥주 브랜드 사(社)에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홍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맥주 캔을 든 철학자’와 바로 계약을 맺고는 이후 열릴 PGA 챔피언십 티켓과 모든 여행 경비를 제공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다. 무제한(!) 맥주를 제공한다는 내용도 계약서에 들어있다고 한다. 그 조건으로 타이거 우즈 뒤에서 맥주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티셔츠에, 모자에, 그리고 맥주 캔에 ‘새겨졌다’. 15초짜리 광고를 찍어 공식 트위터에도 올렸다. 두 손에 캔을 고이 든 그의 모습은 이제 영원히 기록된 셈이다.
광고 끝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즐길 때만이 가치가 있는 법이다(It’s only worth it, if you enjoy it).’ 타이거 우즈처럼 매 경기에 집중하고 즐기다 보면 레전드가 된다는 말도 되지만, 우리도 이 맥주를 즐길 수만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분명한 건 그냥 맨눈으로 대상을 봤다고 평생(뒷끝 있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얼마나 부러웠으면...) 맥주 이용권을 획득하는, 이 아이러니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