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물원을 위하여
序/이경록
누가 만든 식물원인지 식물원이 하나 둥두렷이 공중에 떠 있다. 낮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뱉는 탄소炭素들이 모여 이 식물원을 감싸고, 식물원의 숨소리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아맹啞盲이 되는 풍조라, 자신의 호흡으로 이 식물들이 생긴 줄 모른다.) 주인 없는 이 식물원은 공중의 정精, 별 꺼지는 밤이면 지상으로 내려온다.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이 잠든 거리를 식물들이 거닐고, 식물들 중의 어떤 놈은 자기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잠든 사람은 모두 식물들인가? 이 세상은 식물을 위한 하나의 식물원인가? (사람들은 모두 아맹啞盲이 되는 풍조라 이런 개념 구분이 불분명하다.) 그러면 밤이여, 다시 끝없이. 이 식물원을 위하여!
-지금 읽어도 새로운 공중정원의 상상력
경주가 낳고 품은 천재 요절 시인 이경록이 절정일 때 쓴 「이 식물원을 위하여」 연작은 상상력과 현실 인식, 미적 완성도 등에서 시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두루 갖추면서 한국 시단에 시적 광휘를 눈부시게 펼쳐 보인 작품들이다. 연작 6편 가운데 첫 작품인 「이 식물원을 위하여 · 序」를 보기로 한다. 안타까운 것은 시 전집에 실린 이 시에서 틀린 곳이 다섯 군데나 발견된다는 것. “탄소炭素들이”가 “탄삭炭索들이”가 되고, 불필요한 구절이 들어가고, 한 구절은 아예 빠지기도 했다.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라도 원전확정이 시급하다.
“식물원이 하나 둥두렷이 공중에 떠 있다”니? 환상을 통해 공중에 돌올한 이미지 건축을 하는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을 우리는 본다. 이 공중정원의 이미지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공중의 핵(“정精”)인 식물원이 “별 꺼지는 밤이면 지상으로 내려”오는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자. 공중의 식물원은 지상의 사람들과 무관하지가 않다. “이 나라 사람들이 뱉는 탄소炭素들이 이 모여 식물원을 감싸고” 있어 보이지 않고, 또 숨소리도 들리지 않 지만 말이다. 시인만이 “사람들의 호흡으로 생”긴 이 식물원을 상상력 속에서 공중에 위치시키고 낮엔 공중에 떠 있다가 밤이 되면 내려오게 한다.
내려온 식물들은 “사람이 잠든 거리를 거닐고, 식물들 중의 어떤 놈은 자기가”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다 못해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는 식물, 이야말로 시적 영혼의 아픔과 불온성이 아닌가? 마침내 시인은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말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인간, 마비된 세상을 향해 일갈한다. “잠든 사람은 모두 식물들인가? 이 세상은 식물을 위한 하나의 식물원인가?”고.
이제 우리는 시인이 공중에 하나의 식물원을 축조한 이유가 하나의 ‘식물원이 되어버린 당대의 세상’에 대한 저항 의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인은 식물원이 지상에 내려오는 이 의식을 통하여 ‘아맹啞盲’이 된 당대의 숨 막히는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시적 응전을, “그러면 밤이여, 다시 끝없이. 이 식물원을 위하여!”라고 지속하고 있다.
어떻게 시인은 70년대 중반에(「이 식물원을 위하여」 연작은 『현대문학』 1976년 1월호와 같은 해 봄에 발간된 동인지 『자유시』 1집에 실려있다.) 우리 시단에서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공중정원’의 상상력(송찬호는 1989년에 낸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에서 「공중정원」 연작 3편을 선보인다.)을 10년 이상이나 앞당겨 선취하고 형상화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이런 미학적 건축술은 확실히 시인만의 독자적인 영역이다.
실제로 시인은 이 연작을 쓰기 위해 남산식물원과 창경원을 여러 번 다녀왔고 “피다 만 산난초 하나”(연작 1), “말이 필요하지 않은 질경이풀”, “오래 사용하지 않은 목구멍”에 “얼기설기 엉켜 있”는 가시덩굴(연작 2) “본적이 다”른 산다화, “서로 말이 없”는 개불알꽃(연작 3), “시들고 짖이겨져 있”는 개나리, 진달래(연작 4), “입만 벙긋”하는 포인세티아, 남천, 철쭉, 동백, 열대식물(연작 5) 등 다양한 식물들을, 소통 불능이 된 당대 인간의 양태와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연작의 놀라운 신선함을 알아본 당대의 대표적인 평론가 김현이 “작품을 쓰는 대로 모두 문학과지성사로 보내라”는 엽서를 보낸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뒤이은 발병과 투병으로 그는 “내 피는 하늘에서 별이” 된다는 시(「빈혈」)만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그의 빛나는 업적을 이어가는 것은 이제 후배들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