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기반으로 한 책은 널리고 널렸다. 신라 유적과 신라사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술서적들만 해도 수만 권이 넘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경주를 특정할 만한 영화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개봉된 영화 중에 작품성과 흥행을 다 잡은 알찬 작품도 있었던 반면 언제 그런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영화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는 ‘신라의 달밤(2001)’이다. 김상진 감독이 연출했고 이성재, 차승원, 김혜수 등 당시로서는 가장 핫한 배우들이 출연했고 인기 있던 조연인 이원종, 성지루 등이 가세한 조폭 영화다. 흥행도 성공적이어서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서울 160만, 전국 480만명의 출중한 성적을 거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경주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요점은 영화의 모티브가 수학여행에 있고 그 수학여행의 요람이 경주였다는 사실이다. 극중 주인공인 최기동(차승원 분)과 박영준(이성재 분)이 수학여행 와서 경주의 고등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인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제목답게 황남동 고분군, 감포 앞바다, 영화의 주요 촬영지였던 황오동 상가, 서출지, 불국사 유스호스텔 지역, 보문호수는 물론 경주경찰서까지 직접 비추는 등 경주의 구석구석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들에 몰입하다 보니 경주의 풍경이 차분하게 조명되는 흔적은 적은 편이다. 고분들이 자주 드러나는 장면 이외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 영화가 온전히 경주에서 찍은 영화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경주의 색채를 담는 데는 소홀했다.
당시 이 영화는 경주 출신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강우석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었는데 나중에 투캅스3(1998), 주유소 습격사건(1999) 등의 연출로 알려진 김상진 감독으로 바뀌면서 출연진도 일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경주를 다시 알리는데 충분한 영화였고 경주사람들에게도 수학여행 전성기 경주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쉬운 것은 2001년은 지금처럼 SNS가 발전하지 않은 시기이다 보니 영화가 흥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신라의 달밤을 보고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지금처럼 SNS가 발달했다면 영화를 보러 온 관광객도 훨씬 많았을 것이고 영화 촬영 장소들마다 관광객이 들끓는 특수도 누렸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드라마 선덕여왕(2009 MBC)과 상당한 대조를 보인다. 최고 시청률 43.6%를 기록한 근래 보기 드문 흥행작이었던 이 드라마는 2009년 5월에 방영을 시작해 같은 해 12월 22일에 종영했다. 마침 이듬해인 2010년은 대한민국 스마트폰이 보급이 500만 대를 넘어선 스마트폰 대중화의 시대였고 이를 기반으로 한 SNS의 효과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당시 선덕여왕 촬영장소는 경주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연일 몸살을 앓았다. 오죽하면 그 이전에 아무도 찾지 않던 낭산의 선덕여왕릉이 관광객들의 행렬로 근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을까?
이서진, 김희선이 주연을 맡아 방영된 ‘참 좋은 시절(2014 KBS2)’도 30.3%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경주 알리기에 톡톡히 한몫했다.
그러나 아무리 SNS가 발달해도 영화건 드라마건 흥행하지 못하면 이런 특수를 기대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장률 감독이 내놓고 ‘경주’란 제목으로 찍은 영화 ‘경주(2014)’의 경우 경주시민들조차 이런 영화가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묻혀버렸다. 경주출신 송창수 감독이 도굴을 소재로 찍은 ‘마이 캡틴 김대출(2006)’도 경주에 파급효과를 미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경주는 ‘신라의 달밤’과 ‘참 좋은 시절’ 이후 이렇다 할 영화나 드라마를 유치하지 못한 채 영상산업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신라의 달밤’이 SNS 발달 이전 기억나는 경주 영화로 선택된다면 SNS발달 이후 경주사람들이 자신 있게 말할 경주 영화는 언제쯤, 누구에 의해 만들어질까? 꾸준한 스토리 개발과 영화·드라마 유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