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경주에 몇 번을 더 갈까? 10여 년 후에도 경주에 내려가게 될까? 나도 모르는 사이 경주에 대한 정과 연대의식이 자꾸 옅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계신 어머니 생신을 맞이해 형제들이 경주를 찾았다. 형제들 사는 곳이 서울, 경기도 남양주, 울산, 경산남도 거제도로 각각 다르지만 어머니 생신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모두 모여 1박 2일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황리단길, 동천의 갈비집, 보문의 커피가게 등 어머니 모시고 동부인해 함께 즐긴 그 자체가 그저 좋은 시간이었다. 이튿날 오전에는 부친 산소를 찾아뵙고 나무그늘 아래 둥그렇게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딘가에 형제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자는 이야기가 불쑥 나왔다. ‘앞으로 경주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에서 시작되어 어디에 땅을 구해 집을 지어놓고 명절 등 형제들이 모두 모일 필요가 있을 때는 그곳을 베이스 삼아 함께 지내자는 목적에 의기투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 바로 `어디로 할 것인가`이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운영하자는 기본방침에는 쉽게 합의했으나 ‘경주’로 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언제든지 가서 쉬고 재충전하고 어머니 모시고 형제들이 함께 할 지역으로 경주를 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가 있었다. 형제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주를 떠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를 떠난 이후 경주를 찾게 되는 핵심 이유는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아니라면 굳이 경주로 고집할 합당한 이유나 명분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우리 형제들이야 경주가 고향이라지만 각자의 배우자들은 모두 경주가 아닌 타지 출신들이다. 각각 경주를 떠난 지 30년에서 40년이 되어 가고 경주가 타향인 사람들과 살림나서 살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추가되었다. 어릴 적 고향 시골과 달리 너무나 많이 변한 고향의 모습도 이런 망설임의 이유다. 겉모습도 그렇지만 친척들도, 친구들도 떠나버린 시골이 서울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지불식 중에 이제 경주가 나의 중심에서 빗겨나 있음을 발견하며 한편에서는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이런 내가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 경주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문득 경주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의 나와 경주, 경주와 나의 관계를 그려보며 차근차근 준비해가고 싶다. 형제들과 함께 공유할 근거지를 경주에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부터 경주와 나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싶다. 살면서 한번은 이런 화두를 던지고 실행하고 싶었는데 지금이 바로 딱 그 시점이다. 경주에 선연히 마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내가 경주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경주에 대해 다시 제대로 관찰하고 알아가기를 시작하고, 그동안 보지 않았던 경주의 역사와 내면을 공부하고 체험하면서 나와 경주와의 인연을 리뉴얼 아닌 재건축하는 여정의 첫발을 오늘부터 떼고 싶다. 그나저나, 이번에 고속버스로 경주를 다녀왔는데 도착할 때와 출발할 때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의 화장실 갔다가 크게 실망했다. 터미널 자체가 많이 낡았지만 낡았다고 깨끗하지 못하거나 냄새가 나야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제관광도시라는 호칭과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의 의지에 비해 지나치게 동떨어진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 모습이 지금 경주의 속 모습 같아 가슴이 서늘했다. 많이 분산되었지만 아직도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은 경주의 관문이 분명한데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만 강조하고 가꿀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 충실했으면 한다. 경주 살던 나에게도 그럴 진데 경주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주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이 줄 첫 대면의 느낌이야 오죽할까? 어쩌면 화장실에 그렇게 큰 마음이 가는 것이야말로 경주에 대한 향수와 미련이 진하게 베인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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