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 당연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이 세상은 나만 사는 게 아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그것에도 영향을 미치고 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우린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또 해야 한다.
문제는 도가 지나칠 경우다. 남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는 경우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남의 시선에 갇혀 있다고나 할까, 사회적 탄력 관계 그 건강함이 위축될 정도로 의식을 한다면 문제가 된다. 이건 분명 적신호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사회 전체로도 그렇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과도하게 신경을 쓰기는 할까?’ 상황을 바꾸어놓고 보면 해결될 텐데, 그런 과정 없이 나만 과몰입하고 있다면 쉽사리 헤어날 수 없다.
어릴 때 이런 경험들 있을 거다. 혼자 길을 걷다가 우연히 신호 대기 중인 버스를 의식(!)했다 하면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왠지 나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상상 말이다. 섬세하고 민감한 성격의 나는 특히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사회성을 배우게 되는 사춘기 때였을 것이다. 멀쩡히 잘 걸어가다가도 이런 타인의 눈을 의식하게 되면 그 순간 걸음도 엉성하고 긴장에 손에 땀이 흥건했을 순간은 분명 내 얼굴에 여드름 꽃이 폈을, 중2 때였으리라.
그 시기가 지나면 의식하는 버릇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다. 그 눈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사람뿐 아니라 CCTV며 SNS 같은 사회관계망의 시선도, 심지어 대형 화물차 뒤에 붙인 눈알 스티커도 자주 보이는 요즘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눈알 스티커는 의외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만 졸리는 눈으로 앞을 쳐다보는데 우연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눈을 의식된다면, 졸린 눈은 금방 또렷해진다. 남자들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도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볼 일 보는 사람 눈 위치에 가상의 눈이 그려져 있다면 엉뚱한 데 흘리는 실수를 현저히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효과는 확실하다.
미국의 한 화재 현장에 스파이더맨이 나타났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현장에 이미 도착한 경찰들은 불길이 거세어 집 안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못 내고 그저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남성이 에어컨 실외기를 올라타더니 쏜살같이 울타리를 넘어 2층 유리창을 맨손으로 깨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신속 정확했다. 급기야 연기가 가득한 방 안으로 상체를 쑤욱 집어넣더니 2살짜리, 6살짜리 아이를 안고 내려온다. 불길 속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뛰어왔다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온몸이 그을리고 재투성이었지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등장할 때처럼 그저 불쑥 사라져 버렸다. 등장에서 퇴장까지 그는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독의 큐 사인을 기다리는 영화 속 영웅과 달리 이렇게 진짜 영웅은 평범한 우리 주변에 숨었다가 튀어나온 듯하다.
반면에, 남의 눈을 의식한 나머지 멀쩡한(물론 1970년 대 제작된 고물이긴 하지만) 비행기를 일부러 격추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어느 미국 유튜버도 있다. 비행 중 엔진이 갑자기 멈춰서 버렸다고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카메라에 대고 말하더니 비행기를 버리고 그냥 탈출해 버린다. 비행기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 잡힌 그의 모습에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걸 보면 계획된 게 아닐까 의심마저 든다. 추락하면서도 손에 든 카메라로 연신 자신의 모습과 뒤의 추락하는 비행기를 한 화면에 담는 노련한 기술도 시전했다. 230만 명이 이 동영상을 봤다고 하니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 눈이 가장 의식되는가? 나는 내 아들 녀석의 시선이 특히 그렇다. 흔히 ‘아이는 어른의 말이 아니라 들켜버린(!) 행동을 보며 성장한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왜냐하면 난 말과 행동이 아주 다른 아빠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지켜보는 눈도 있다. 제3의 눈이라고도 하는 마음의 눈은 나와 내 행동을 늘 지켜보고 있다. 가령 남의 흉을 본다 치자. 상대는 아닐지라도 나는 내가 하는 욕을 듣고 있다. 남의 그것보다 내 시선이 더 무섭다. 그저 지켜만 보고 있으니 더욱더 무섭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