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지원하기 위해 출병했던 왜국군은 백마강 하구에서 당나라 수군에게 충격적 패배를 당하였다. 충격의 파고가 쓰나미처럼 왜국을 덮쳤다. 왜국의 최고 실권자 중대형 황태자는 패전의 충격을 수습해야 했다. 그때 화급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왜국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중대형 황태자와 왜국의 전쟁지도부는 신라와 당군을 막기 위해 방어의 요충지에 산성을 쌓기 시작했다.
현재 대마도에서부터 오사카까지 곳곳에 건설되어 있는 조선식 산성들이 그때 만든 성들이었다. 왜국으로 후퇴한 백제의 군사들이 산성 건설에 동원되었다는 증거들이다. 그러나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공격을 막는 일은 산성의 건설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도읍 아스카(飛鳥)가 바닷가에 가까워 방어에 큰 문제가 있었다. 당나라 수군의 위력은 백제의 사비성과 백마강 공격 때 몸서리치게 느꼈던 바였다. 만일 오사카까지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면 아스카는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해답은 도읍을 내륙 깊숙이 옮긴 다음, 상륙한 신라와 당나라의 배후를 보급선을 자르는 것 말고는 없었다.
중대형은 아스카에서 내륙에 있는 오미(近江)라는 곳으로 도읍을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심이 시끄러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중대형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사람들이 불을 지르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중대형 황태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천도는 백마강 패배 4년 후에 시행되었다. 667년 3월 19일, 민심이 찢기고 있는 가운데 오미로의 천도가 단행되었다. 이때 액전왕이라는 여류가인이 만엽집 17번가를 만든다.
味酒 三輪 乃 山靑丹 吉/奈良/能 山 乃 山 際/伊 隱 萬代 道隈/伊積 流 萬代 尒 委曲毛 見管行 武/雄 數數毛 見放 武八萬雄/情無雲 乃隱 障倍 之也
‘미주 세 수레에 취한 듯 삼륜산(三輪山)이 붉으락 푸르락하다. / 어찌 더 이상 길하랴. / 삼륜산은 산에서 산 끝까지 불태워야 하리. / 너는 만대에 걸쳐 길 모퉁이에 버려지리라. / 너의 자취는 만대에 버려지리라. / 장수들은 불타는 관아를 보고 마음 속으로 아스카의 장례를 치러야 하리. / 수많은 무사들은 아스카의 자취를 마음속에서 지워 버려야 하리. / 무정한 연기는 눈앞을 가로막아 삼륜산을 받드는구나’
작품 속 불타는 삼륜산은 아스카 사람들이 神으로 받들던 신산이었다. 중대형 황태자가가 오미로 천도해가면서 관아와 삼륜산을 불태우고 있었다. 신산이 불길에 휩싸여 술을 세 말이나 마신 것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연기가 자욱히 솟아 올라 삼륜산을 휘감고 있었다.
중대형이 아스카와 삼륜산을 불태운 것은 이들이 더 이상 길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왜국의 문화가 고도로 집적되어 있던 아스카가 이때 잿더미로 변했다. 패전과 천도는 중대형에게 위기를 불러왔다. 민심이반이라는 폭풍이 불어왔다. 중대형은 모든 것이 타버린 폭풍이 부는 언덕에 홀로 서있어야 했다.
일본인들은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우마사케 미와(三輪)산이요. 아오니요시 나라(奈良)에 있는 산. / 산 끝자락에 가려질 때까지 길 굽이굽이 몇 번이고 돌아도 아주 자세히 보며 가고 싶은데 몇 번이라도 보고 싶은 그 산을 무정하게도 구름이 가리면 될 것인가.’
독자분들께서는 일본인들의 해독에서 백마강 패전의 후유증을 발견할 수 있는가. 중대형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가. 고국의 수도 사비성이 타오르는 것을 보아야 했고, 백마강 하구에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왔던 왜국의 군선이 타오르는 것을 보아야 했고, 왜국에 건너 와 타오르는 신산을 바라보아야 했던 백제 유민들의 황당함을 느낄 수 있는가. 백마강 패전의 쓰나미는 왜국의 수도 아스카의 신산 삼륜산까지 덮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