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밤늦게 조깅하는 내용의 광고 한 편이 지금 영국에서는 핫이슈다. 광고는 대충 이런 식이다. 영국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인 빅벤(Big Ben) 시계탑이 새벽 두 시를 가리키자 한 여성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며 삼성 브랜드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소위 ‘새벽 조깅’을 시작한다. 그녀 곁에는 스케이트보드나 묘기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보이고 그녀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몇몇의 여성들은 조깅에 동참하기도 한다. 웃음을 머금은 채.
이런 설정의 광고가 방송을 타자 영국 언론은 일제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라고 꼬집는다. 남성도 위험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치안 상황 상, 여성이 그것도 새벽에 홀로 조깅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이웃 아일랜드에서는 대낮에 조깅을 하던 어느 초등학교 여교사가 묻지 마 살인을 당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광고에 대한 비판 수위는 높을 수밖에 없다.
광고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삼성 광고처럼 글로벌 캠페인의 경우에는 특히 현지 문화나 주요 이슈에 위반이 될 소지는 없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고 한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이런 중요한 사항을 놓쳤을 리는 만무하고, 어쩌면 의도보다 해석상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밤 올빼미들, 당신의 갤*시, 당신의 길’이라는 주제를 굳이 이렇게 표현을 했어야 했을까,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삼성은 바로 “여성의 안전에 관한 지속적인 대화에 둔감한 것은 결코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발표하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기업 입장에서 의도한 메시지가 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환기하는 해프닝이었다. 이렇게 광고를 통한 제품의 본질이 고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게 하는 작업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상품 제작에서 시작하여 광고로 완성되는 기업의 프로세스는 광고를 통해 그 기업 상품으로 전달되는 고객의 그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의도와 해석이 한 지점에서 만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업과 광고업계가 고민하는지 모른다.
서울에서는 다세대주택 건물주가 마네킹 여러 개를 매달아 놓은 엽기적인 사건도 있었다.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 등으로 이웃 주민들과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자 화가 난 건물주가 목이 떨어져(!) 나간 마네킹, 목과 주요 부위에 빨간 페인트를 칠해 마치 피를 흘리는 느낌의 마네킹 등을 매달거나 또 설치해 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 우연히 보면 놀라 나자빠질 정도의 광경이다.
공사를 방해하는 주변 주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선명히 전달된 듯하다. ‘공포스럽다’, ‘엽기적이다’ 등의 민원이 속출하는 걸 보면 말이다. 자신의 건물에 마네킹을 걸어뒀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적어도 메시지 전달 면에서는 글로벌 기업 못지않았지만 불필요한 혐오감을 유발했다는 점에서는 올바른 접근법은 분명 아니다.
의도는 왜 전달하기 어렵고, 해석은 또 왜 럭비공마냥 예측하기 어려울까? 우리는 말로, 대화로 소통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보통 상호작용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채널로 얼굴(표정), 몸짓, 그리고 말투를 든다. 이걸 심리학적으로 재해석하면 대화에 있어 시각(55%)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청각(38%)이며,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7%)은 가장 덜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말의 내용을 제외한 모든 시·청각적 요소를 받아들이는데 고작 0.1초밖에 안 걸린다는 사실이다.
의도와 해석의 궁합이 썩 좋지 않은 이유는 이렇듯 충분하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다른 별에 살며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을 시도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에 같은 뇌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일란성쌍둥이라도 예외 없다. 서로 다른 회로망을 가진 뇌는 세상을 다르게 인식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술이 얼큰한 어르신들 보면 죄다 “내 말 좀 들어보라”며 했던 말 또 하시고 듣는 상대도 자신의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