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노자와 장자에 푹 빠져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이 몹시 부끄럽다. 세상을,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선종(禪宗)이 크게 일어난 것은 노자와 장자의 영향이컸다. 노자는 부처님과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고, 장자는 약 2세기 이후의 인물로 노자보다 더 스케일이 컸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그리고 이 두 분이 세상을 보는 눈이 부처님과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었는지……. 대승불교의 논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쓰이는 말로, ‘언어도단’이란 말로 표현할 수도, 사고로 생각하여 짐작할 수도 없다는 의미이다. ‘심행처멸’은 마음의 작용이 미치지 못하는 절대 경계의 본체심(本體心), 곧 사량분별(思量分別)이 끊어진 경계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56장 「현덕(玄德)」편에서는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라고 하여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두 경전에서 표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내용은 다르지 않다. 또 『장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관규려측(管窺蠡測)’은 대롱으로 보고 소라껍데기로 바닷물의 양을 잰다는 의미이다. 불가에서도 노자도 장자도 필자더러 기림사에 대해 아는 척 떠들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랴 격주로 글은 써야만 하니……. 일주문을 지나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깊은 산중에 들어선 느낌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사천왕문을 지나면 진남루와 대적광전 ·응진전 등 창건 당시의 가람을 만나게 된다. 왼쪽 즉 서쪽은 석단을 구축하여 1980년 이후 비교적 너른 터에 삼천불전과 관음전·삼성각·명부전·노전·기림유물관 등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천왕문은 수미산의 중턱에 있는 문으로 안에는 청정한 부처님의 세계를 지킨다는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 사방을 지키는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법을 지키며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피고 또 바른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천왕문 안으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안쪽으로 동방 지국천왕이 비파를 연주하고, 남쪽으로는 남방 증장천왕이 보검을 휘두르며 위협을 하고 있다. 반대쪽으로는 입구 쪽에 서방 광목천왕이 눈을 부라리며 오른손으로 용의 목을 틀어쥐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광목천왕의 왼쪽으로는 다문천왕이 보탑을 번쩍 들고 불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천왕문 안의 사천왕의 위치와 지물(持物)은 사찰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다문천왕이 보탑을 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천왕들은 발밑에 무서운 악귀나 마귀를 밟고 있는 경우 이를 생령좌(生靈座)라고 하는데 사천왕의 위력으로 악함을 누르고 선함을 수호한다는 그런 의미를 두고 있다. 바위를 밟고 있는 경우는 이를 암좌(巖座)라고 한다. 이 사천왕이 지키는 사왕천을 지나면 도리천(忉利天)에 이르게 되니 이 문밖은 천하(天下)가 되고 문 안으로는 천상(天上)이 되는 것이다. 천왕문을 나오면 동편을 제외한 사방이 전각으로 둘러싸고 있는 절마당이다. 남쪽으로는 진남루, 맞은 편은 본전인 대적광전과 그 우측은 관음전, 서편으로는 응진전, 동편은 목탑지이다. 목탑이 남아있었다면 절 마당은 사방이 건물로 에워싸인 형태였을 것이다. 사찰에 따라서는 천왕문 이전에 금강문을 두기도 한다. 이 문은 코끼리 백만 배의 힘을 가진 금강역사가 지킨다. 금강역사는 불법을 훼방하는 사악한 무리들이 사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권법(拳法)을 취하고 있거나 인간의 번뇌를 부숴버리고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고자 금강저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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