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슈퍼                                                 김수우 천마산 밑 초장동 ‘근대화슈퍼’가 부산항을 펼치고 있다 근대화, 슈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1950년대 점방 그대로다 소주도 팔고 담배도 팔고 감귤도 판다 식용유, 비누, 북어와 번개탄이 거미줄을 치고 기다린다 가난은 이끼 많은 바위처럼 고집 센 가축 희망과 예언은 근대화될 수 없다 거기서 팔리는 것은 언제나 초월 피란의 역사를 기르는 산동네 늙은 몸집마다 홍역처럼 아직도 부적(符籍)이 피어난다 슬픔은 화석이 되지 않는 것처럼 그림자는 숨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천마산도 동백꽃도 근대화되긴 글렀다 과자 든 네 살배기 팔랑팔랑 나비가 되고 막걸리를 사든 팔순 노인 꾸물꾸물 애벌레가 된다 때묻은 차양 위에서 미끄러지는 햇빛의 발 고장난 계량기를 딛고 아득바득 벼랑에 매달린 근대화슈퍼, 형광등을 켠다 푸득푸득 다친 비둘기처럼 -애벌레에서 나비로, 그 명랑한 비상 부산 서구 천마산 자락 아래 ‘초장동’이라는 마을에는 “근대화, 슈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1950년대 점방 그대로”의 모습을 한 ‘근대화슈퍼’가 있는 모양이다. ‘草場’은 말 그대로 풀을 기르는 넓은 마당이라는 뜻인데, 이 슈퍼는 벼랑길에 매달려 부산항의 한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 “이끼 많은 바위처럼 고집 센 가축”같은 가난을 어떻게 쉽게 떨칠 수 있겠는가? ‘근대화’라는 말을 달았다고 해서 “희망과 예언은 근대화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팔리는 것은 언제나” 세월을 초월하여 소주와 담배와 감귤 같은 것이며 식용유, 비누, 북어와 번개탄은 찾는 이 적어 “거미줄을 치고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이들은 “피란의 역사를 기르는 산동네” 골목의 가난의 세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동네 구석구석마다 “홍역처럼 아직도 부적(符籍)이 피어”나는 곳. 그러니 화석이 되지 않는 슬픔과 숨지 않는 그림자를 보며 “천마산도 동백꽃도 근대화되긴 글렀다”는 풍자가 나올 만하다. 그래도 시인은 이 마을을 꽃동네로 삼고 싶은가 보다. “막걸리를 사든 팔순 노인 꾸물꾸물 애벌레가 된다”는 해학에는 팔순 노인의 삶이 “과자 든 네 살배기 팔랑팔랑 나비가 되”는 명랑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고, 아직도 “고장난 계량기”에는 “차양 위에서 미끄러지는 햇빛의 발”이 딛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아득바득 벼랑에 매달린 근대화슈퍼, 형광등을” 켜는 장면이 “푸득푸득 다친 비둘기”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껴안아야 하는 2020년대에도 1950년대의 가난의 골목을 거느린 우리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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