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보면 불이라는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끈끈한 가족애가 살아나고 포용력도 생기지 않습니까? 이것이 동창회장을 맡은 저의 소임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6월 10일 강남구 소재 삼정호텔에서 경주중고등학교 동창회 정기총회 겸 동창회장 이취임식이 열렸고 29대 황문섭 회장의 뒤를 이어 제26대 경주중고서울동창회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태우 씨가 제30대 동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재력가 중심의 회장을 선출하던 기존의 기수와 달리 활동력이 왕성한 이태우 씨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동창회에 필요한 경비는 동기생들이 힘을 모아 대겠다는 모범적 약속으로 출범한 동창회이다. 그런 만큼 동창회 운영에 대한 이태우 신임회장의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은 정기총회 당일부터 후배들과 동기들 간에 앞으로 동창회 운영의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기본적으로 후배들의 참여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서 동창회 영속의 문제가 커졌어요”
가장 먼저 행사 진행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져 나왔다고 고백한다. 늘 나오는 말이지만. 젊은 후배들이 동창회에 나와서 무언가 참여하는 기분이 나야 하는데 인사말에서 시작해 인사말로 끝나는 따분하고 구태의연한 동창회 행사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았다는 것.
“동창회란 것이 선배님들을 우대하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그분들 없이 동창회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반면 미래를 내다보면 젊은 기수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하고요”
이태우 회장은 그래서 더 영화 미나리가 가슴에 와닿았다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미국 이민자들을 조명하고 있지만 지금 미국으로 가는 것이나 우리가 젊었을 때 서울 와서 사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이태우 회장은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외롭고 힘들게 공부하거나 취업해 한 발 한 발 삶을 개척해온 이전 세대 많은 출향 인사들의 삶이 공간과 시간만 다를 뿐 영화상의 주인공인 미국 이민자 제이콥(스티븐 연)과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이태우 회장 자신,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면서 느꼈던 낯섦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집념을 가지고 악착같이 살았던 것이 새로 이주한 땅에서 농작물을 가꾸겠다고 온갖 어려움과 맞서는 제이콥과 다를 게 없었다는 것.
“그 와중에 하나둘 경주 친구들을 만나서 위안을 얻고 동창회와 향우회라는 출향모임에 참여하며 서로 유대를 맺은 것 역시 제이콥이 한국 동포를 만나 서로 돕는 것과 흡사하잖아요!”
그러나 미나리를 본 사람들이 알고 있듯 미나리에도 세대 간의 갈등은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할머니(윤여정)와 아이들 사이의 어색함과 이질감은 지금 70대와 이상의 동창회 고령 인사들과 30대와 40대 동창회 신예들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만큼 크다. 그 사이에 끼어 동창회 전체를 이끌어 가야할 60세의 이태우 회장의 역할은 더도 덜도 할머니와 아이들 사이에 낀 제이콥이다.
“결국 이런 차이와 요구를 어떻게 현명하게 좁히느냐가 가장 큰 숙제이겠지요. 대선배님들을 정중히 모시면서도 후배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숙제란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 어려운 숙제를 떠맡은 만큼 혼신을 다해 회장직을 수행해야겠지요!”
지난 10일의 취임식에서 이태우 회장은 ‘내실 있는 동문회, 끈끈한 조직’을 표방하며 29대 동창회가 만든 경주중고등학교서울동창회TV를 적극 활용해 젊은 동문들을 영입하고 기업하는 동문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등 동창회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천명했다.
한편 이태우 회장은 미나리 마지막 부분에서 불이 나 농산물 저장창고를 태우면서 오히려 가족들 간의 사랑이 깊어지고 관용이 넓어진 것과 같이 동창회나 경주 관련 향우 단체들도 이런 중대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무언가 충격을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자신 다양한 세대 간의 화합을 조성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미나리는 한 번만 잘 안착시켜 놓으면 달리 손을 보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미나리를 키우는 심정으로 임기를 보내겠습니다”
영화 미나리에서 위기를 맞은 가족들이 똘똘 뭉쳤듯 이태우 회장이 이끄는 경주중고등학교서울동창회가 신구 동문들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서울천지에 그 싱싱한 빛을 떨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