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경주시와 경주문화원에서 낸 신문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향가 관련 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서예가와 서각인을 각각 모집하는 광고인데 그에 책정된 비용을 보고 이게 잘 못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원작자인 서예가는 150만원인데 서각하는 장인은 45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판단이었을 것이다.
‘서예가는 붓 한 번 쓱 휘두르면 되는 작업이고 서각장은 일주일쯤 연장 들고 나무와 씨름해야 한다’고. 서각에는 나무값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예가 하루 아침에 완성될 수 없고 명성 있는 서예가 대부분은 평생 글자 한 자를 제대로 쓰기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해온 고도의 예인이자 도인이다. 현판에 쓸 글씨 한 점을 위해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에 쏙 들기 위해 마음과 자세를 정갈히 하고 수십 번 넘게 글씨를 쓴다.
이 광고는 서각장인의 현실적 작업을 예우한다는 현실적 의도가 보인다. 그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엄연히 원작인 서예가의 글씨를 판각하는 것뿐인데 원작자보다 더 높은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본말이 뒤집어진 일이다. 마치 피카소의 작품을 인쇄해 거창한 장식을 하면 피카소보다 더 비싼 값을 쳐주는 것이나 같다. 굳이 서각을 존중하고자 했다면 서예가 되는 서각 장인에게 따로 의뢰하거나 컴퓨터 글씨체를 깔고 서각하는 방법 등도 좋을 것이다.
이 일로 경주의 또 다른 서예가 한 분과 서울의 서예가 한 분과도 통화했다. 두 서예인은 서예:서각을 3:1 혹은 최소한 2:1로 구분하기를 원했고 서각 장인의 현실적인 작업상 어려움과 그 자체의 예술성을 인정해 1:1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원작보다 높이 책정되는 것은 서예가에 대한 실례라고 못 박았다. 아울러 이런 어처구니없는 응모에 자존심 있는 서예가라면 참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고 일축했다. 또 고작 1명씩 뽑는 일을 이렇게 광고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십여년 전 경주 출신 서예가 한 분이 무슨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이름 높은 인사동 판각장인과 협의해 자신의 글씨 한 점을 이십여점의 판각으로 새겨 지인들에게 판매했다. 재료는 홍송, 크기가 160x22x7, 향가보다 훨씬 많은 한문 100자 정도가 들어갔다. 그 판각 한 점이 당시 80만원이었다. 그 서예가의 작품 한점 가격은 보통 500만원이었다. 경주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참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