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한 배경을 가진 어느 속옷 모델의 등장에 세계적으로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주인공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24살 소피아 히라우(Sofía Jirau)인데, 그녀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다운증후군(Down’s syndrome)은 상염색체 이상으로 생긴 질환 중 가장 흔하게 보이는 형태로 알려져 있다. 보통 두 개만 가지는 21번 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게 되어 생기는데, 특징적인 얼굴과 신체 구조가 나타나게 되며 지능적으로도 핸디캡이 있다. 커다란 천사의 날개를 단 금발 모델을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시크릿 사(社)에서 최근 자사 홍보 모델로 그녀를 깜짝 발탁한 것이다. 보통 속옷 모델이라면 깡마른 몸과 비현실적인 외모 등을 기대한다. 두 조건 앞에 ‘지나치게’라는 부사를 덧붙이는 게 더욱 적절할 정도다.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와, 이쁘다!, 멋있다!” 감탄하지만 절대 자신의 삶에 개입시키지 않는다. 반면에 그들의 완벽한(!) 조건을 선망하는 동시에 자신의 외모를 폄하하고 강박한다. 문제는 후자 쪽이다. 이처럼 외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가령 신체 이형증이나 거식증 같은 질환으로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 일부분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믿는 신체 이형증 환자들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 대신 자기 신체의 어느 부위가 ‘정말’로 이상하다고 믿는다. 거의 망상적인 수준으로 말이다. 매력은커녕 자기 자신을 기형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조롱한다는 망상에 시달린다. 또한 외모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한편, 거식증은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한다. 이 또한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왜곡 성향이 강하다. 공식 명칭인 신경성 식욕 부진증에서도 알 수 있듯 ‘씹뱉(씹고 뱉기)’, ‘먹토(먹고 토하기)’,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매)’ 등 그들이 자주 쓰는 용어에는 체중 증가와 비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녹아 있다. 이 모든 병적 현상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높은 미의식에서 비롯됐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자 세계 여러 국가들과 패션 업계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디지털상 변형된 신체 이미지 법안(Digitally Altered Body Image Bill)’이 그 대표적이다. 영국의 루크 에반스(의사이며 보수당 의원)가 발의한 이 법안은, 온라인 상에 올라오는 광고용 게시물에 보정된 사진이 포함되었다면 이를 꼭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러분들이 지금 보고 있는 허리 한 줌의 모델은 컴퓨터로 완성한 가짜니까, 절대 우울해하거나 자학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흐름은 이렇게도 이어진다. 외부를 향하던 시선을 이제 안으로 돌려, 우리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캠페인으로 말이다. 획일화된, 상업적 잣대로 마련된 미의 기준에서 이젠 벗어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걸 흥미롭다 해야 할지 징글징글하다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패션 업계는 이제 보디 포지티브 트렌드의 유행(?)을 고심 중이란다.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당연히 속옷도 변하고 있다. 보다 본질에 충실하게 되었다. 편안함이나 기능성 면에서 말이다. 여태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는 시각적인 볼륨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 실용성과 착용감이 중요해졌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사각팬티나 트렁크 형태가 여성형으로 출시되자, 높은 통기성과 신축성 등 신세계를 경험해 본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돌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우아한 디자인에서 편안한 착용감으로 선택 기준이 점점 바뀌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새 모델 히라우는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안으로 밖으로 어떠한 장애도 없어요. 저처럼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도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사업을 할 수도 있지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당당함이 느껴진다. 세상은 여전히 거식증과 같은 정신 건강상 핸디캡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다. 하지만 희망도 선명하다. 한국의 어느 패션 브랜드에서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을 매장에 비치했다고 한다. 190cm이던 남자 마네킹이 이제 172.8cm로, 184cm이던 여자 마네킹도 160.9cm로 줄어들었다. 이게 더 현실적이다. 170cm이 안 되는 나도 크게 안심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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