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관련 외부 강의를 할 때면 첫 번째 수업은 ‘명필은 붓을 가린다’라는 제목으로 서예 재료나 도구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나무를 잘게 찢어 만든 죽필(竹筆),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만든 송연먹(松煙墨), 뽕나무 섬유로 만든 뽕나무 종이(桑紙), 옛 기와를 깎아 만든 와연(瓦硯) 등 가방을 가득 채운 붓, 먹, 종이 그리고 벼루를 강의실 책상 위에 하나하나 펼쳐 놓으면서 수업은 시작된다. 다양한 재료들을 직접 보고 만지는 동안 대부분의 수강생은 신기한 것을 본 마냥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이러한 흥미로운 체험은 수강생들에게 고루할 것 같은 서예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서예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초의 유명한 서예가인 구양순(歐陽詢)과 관련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인데, 뛰어난 서예가는 붓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능한 목수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말을 곱씹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명필은 정말 붓을 가리지 않았을까?
명필은 붓의 능력치가 50이라고 하면 50에 최대한 가깝게, 종이의 능력치가 100이면 100에 근접한 수준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즉, 그가 처한 조건에서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본인의 최고 역량을 발휘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명필에게 쥐여진 도구가 작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잔글씨용 붓(細筆)이 필요한데 뭉뚝하고 큰 붓이 있고 현판을 제작할 때는 크고 힘찬 글씨를 써야 하는데 행서나 초서에 적합한 길고 부드러운 붓(長毛筆)만 있다면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 열악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작업을 마치겠지만 결과물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서예는 그 전통에 걸맞게 사용 도구도 함께 발전해왔다. 그중 문방사우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져 여러 상황들에 적합한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하였다. 붓은 양, 족제비, 쥐 등 갖가지 동물의 털을 비롯해서 대나무나 짚풀 등 식물섬유 등도 사용해 붓의 크기, 탄성, 유연성 등을 달리했다. 종이 역시 우리가 한지라고 알고 있는 닥나무 종이를 비롯하여 대나무, 오동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 섬유로 만들어졌는데 두께와 번짐 등의 차등을 뒀다. 먹은 크게 소나무를 사용해 만든 송연먹과 씨앗을 압착해 만든 기름을 사용한 유연먹(油煙墨)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을음의 원료를 다종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먹색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완성된 도구들은 재료 고유의 특징이 분명한, 즉 개성을 갖게 된다.
‘명필은 붓을 가린다.’라는 말의 참뜻은 훌륭한 서예가는 제작하는 작품에 꼭 맞는 재료와 도구를 찾아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서예가라고 일컫는 김정희(金正喜)는 재료와 도구에 예민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대에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조선에는 없는 고급 문방사우를 경험했고 그것들의 효용을 즉각적으로 깨달았다. 제주도에서 유배생활 중에도 서울의 아들들에게 편지를 보내 보다 좋은 종이와 붓을 요구하곤 했다. 이러한 재료와 도구에 대한 철저함으로 인해 김정희는 제주 유배시절 이후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歲寒圖)>와 같은 명작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용 재료와 도구의 중요성은 기본적인 일이지만 아쉽게도 요즘 우리나라의 서예계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조잡한 털로 만든 붓, 이름만 화선지를 빌린 펄프가 주원료인 종이, 정체불명의 먹과 먹물, 조악한 벼루를 평생 사용하는 서예가도 부지기수다. 이런 재료들로는 최고의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예술가라면 자신이 쓰는 도구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있어야 하며 다양한 재료들을 시험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재료에 대한 여러 시도를 통해 누적된 경험은 작품 제작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 결국 명필은 적재적소에 합당한 도구와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핑계로 너무나 당연한 도구의 중요성을, 나아가 양질의 서예 용품을 제작할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