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청년시절에 시인 실러(1759-1805)를 흠모했다. 특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읊조리며 언젠가는 가사에 곡을 붙이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그 곡이 교향곡 9번 ‘합창’이다. 합창 교향곡은 청각을 거의 상실한 베토벤이 운명하기 3년 전인 1824년에 빈에서 초연된다. 합창 교향곡 4악장의 성악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바리톤은 베토벤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 부른다.오,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들이 아닌,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는 다름 아닌 ‘환희의 송가’이다. 베토벤은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것이리라! 다음은 첫 구절이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천상낙원의 딸들이여, 우리는 정열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의 성전으로 들어간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온화한 그대의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서. 환희의 송가는 가사에서 보이듯 인류애(형제애)를 노래한다. 이 노래가 현재 유럽연합(EU)의 국가(國歌)이고,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번스타인(1918-1990)이 세계연합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주한 곡이란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은 합창 교향곡(4악장) 초연 장면을 장쾌하게 묘사한다. 연주가 끝났음에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베토벤을, 그의 제자(실제로는 합창단원이었다고 함)가 열렬히 호응하는 관객 쪽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은 언제 봐도 감동이다.
합창 교향곡은 음악사의 관점에서도 특별한 곡이다. 고전파의 특성이 감소하면서 낭만파로 이행하는 여러 흔적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음악이 길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길어지는, 낭만파의 중요 특성이다. 둘째, 성악이 들어간다. 교향곡은 기악곡인데, 이런 형식을 과감히 깨버린다. 셋째, 표제음악이다. 성악이 들어가니 내용이 존재한다. 이전 고전파 음악은 음 자체가 중요한 절대음악이었다.
합창 교향곡은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넘어가는 다리가 되었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세웠던 고전파의 엄격한 형식들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낭만파로 가는 길을 열었다. 낭만주의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거센 흐름이었다. 19세기 초에는 베토벤의 바통을 이어받을 낭만주의의 천재들이 줄줄이 태어난다. 1803년 베를리오즈, 1809년 멘델스존, 1810년 쇼팽과 슈만, 1811년 리스트, 1813년 바그너와 베르디. 이들은 베토벤을 멘토 삼아 낭만주의의 위대한 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