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 그룹 한주식 회장은 지인이나 직원들 앞에서 당신이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왔으며,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1915~2001)과 동문(同門)임을 자랑할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 그렇군요’ 하며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다가 퍼뜩 의문을 느끼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데.., 옥스퍼드 대학교 라니...’ 의문을 오래 가지기 전에 한주식 회장의 설명이 따라온다. “내가 옥스퍼드를 나왔다고 했지, 졸업했다고는 하지 않았잖소” 말씀인즉, 옥스퍼드시를 방문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대학교의 문을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것이며, 정주영 회장 역시 동일한 문을 들고 났으니, 동문(同門)이라는 것이다. 지산그룹에 근무하는 손영준 과장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정주영 저, 제삼기획 1991)’를 다시 읽게 된 이유는 한주식 회장의 철학이 정주영 회장의 철학과 흡사해서다. “회장님은 정주영 회장님을 깊이 존경해 수시로 가장 본받고 싶은 인물로 강조하셨습니다. 50대 중반에 다시 읽게 된 이 책은 어쩌면 제 인생 후반기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불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나온 1990년대 초반에는 비슷한 성공서 혹은 경영철학서가 많았다. 대우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미국 자동차 기업 클라이슬러의 회장이 쓴 ‘아이아코카 자서전’ 같은 기업가들의 경영서가 대종을 이루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뻔한 스토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저는 책을 읽고 나서도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20대 당시 재벌기업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 성공한 기업들 대부분이 정치와 결탁해 국민의 혈세로 기업을 일으켰다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거든요” 손영준 과장은 다시 ‘정독’한 책에는 의미 깊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주의 깊게 본 내용이 ‘다르게 생각하는 자세’다. 6.25 전쟁 중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군과 UN군의 묘역을 푸른 잔디로 장식해 달라고 주문한다. 문제는 그 시기가 한겨울이라는 것. 정주영 회장은 한창 밭에 자라던 보리를 옮겨심어 이 요구를 성공시킨다. 1971년, 정주영 회장은 미포 조선소 설립차관을 영국의 바클레이 은행에서 빌려온다. 당시 롱바톰 회장이 현대의 증명되지 않은 기술력을 의심하자 정주영 회장이 지갑에서 우리나라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한쪽 면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물리쳤다”고 설득한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정주영 회장에 대해 설명하는 대표적인 일화일 뿐, 정주영 회장의 인생 전반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건설사로 중동에서 이룬 성과와 현대자동차의 신화, 올림픽 유치에 대한 뜨거운 열정 등에 대해서도 이 책은 그 뜨거운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지금도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던 순간의 강렬한 모습은 세계사의 가장 역동적인 모습일 것이다. 한주식 회장도 정주영 회장과 닮았다. 한주식 회장은 오직 자신의 능력과 집념만으로 물류업계 신화를 창조했으며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 업계를 이끌어온 승부사다. 중국에 물류단지를 계획할 당시 중국측은 냉동창고 안팎의 ‘쥐, 모기, 파리’ 등을 없애기 위해 미국과 같은 최첨단 설비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 경우 각종 센서와 동작 감지기, 전자 살충 시스템 등으로 인해 수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한주식 회장님의 대답은 달랐다. “창고 주변의 웅덩이, 불결한 주변환경, 음식물 등이 해충을 부르는 원인이니 이것을 제거한다면 구태여 수억 달러를 들이지 않아도 되겠지요!” 이 역발상에 중국 고위 공직자는 크게 공감해 한 회장님을 전격 사업파트너로 선정했다. 이 사례 역시 한주식 회장에게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 손영준 과장의 설명이다. “부동산 형질변경의 독보적 전문가이신 회장님으로부터 매일 조회 시간에 듣는 지혜와 경영관, 세상을 따듯하게 빛내는 나눔과 상생의 철학은 오히려 정주영 회장님보다 나으시지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대한민국이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할 당시 정주영 회장의 사업적 철학이지만 지산그룹의 사훈인 ‘걸림돌을 디딤돌’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정립한 시대정신이라는 손영준 과장의 설명이다. 한 세대를 뛰어넘어 두 거장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났으니 두 분은 분명한 동문이 맞다는 손영준 과장, 50대 동년배들에게 꼭 다시 읽어볼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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