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生涯 내내 오르던 山을 내려갑니다 바쁠 것도 없는 下山길, 한숨 돌릴 새 없이 내려갑니다 오를 때 지나쳐 본 것들 눈여겨 볼 수 있어 下山길도 즐겁습니다 돌무덤가 원추리꽃 “형 !” 하며 반기지만 자국 자국 따라올 수 없어 그 눈빛 가엽습니다 산풀들 사이 업어주겠다며 등 내미는 산도라지꽃 “누나 !” 하는 나를 안고 웁니다 옷섶에 와 안기는 붉은 싸리꽃 “엄마 !” 열살 때 소리 알아 들으시고 “내 없어서 우째 살았노?” 같이 엉엉 울었습니다 산길을 내려오며 가슴에 어지러운 것들 하나하나 버려 봅니다 비워진 흰 여백이 파란 하늘처럼 투명합니다 ----------- 하산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세계가 예사롭지 않다, 한 생애를 관통하면서 저승의 세계로까지 잇닿아 있는 시인의 상상력체계가 자유자재로 운용되고 있다. 그냥 써내려간 분위기 위주의 서정시와는 궤를 달리한다. ‘오를 때 지나쳐 본 것들 / 눈여겨 볼 수 있’는 ‘下山길’이 굉장한 의미를 더해줌은 두말 할 나위없다. 바쁘게 살다보면 흘러가버린 세월이 그것이며 나이만 더해 이젠 내리막길 인생이 그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돌무덤 가 원추리꽃 “형 !” 하며 반기’고, ‘등 내미는 / 산도라지꽃’은 ‘”누나 !” 하’고 안고 우는가 하면, ‘옷섶에 와 안기는/ 붉은 싸리꽃’은 어머니가 되어 ‘”내 없어서 우째 살았노?”’ 하며 한 가족사를 보는 듯하다.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거기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산길을 내려오며 / 가슴에 어지러운 것들/하나 하나 버’린다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달관의 경지를 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잠시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뿐 마음에 품고 올 수 없는 삶인 것이다. 이토록 하룻만의 산행이 살아온 수많은 날들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주 절실하면서 절절하게 와 닿는 순토종의 서정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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