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논개제는 매년 5월 이맘때 호국충절의 성지 진주성에서 개최된다. 1868년 당시 진주목사 정현석이 창제한 것으로서 제향에 악, 가, 무가 포함되고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제례인 의암 별제를 서막으로 진주오광대를 비롯한 민족예술과 진주 기생들이 남긴 교방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문화와 여성을 테마로 한 축제이다. 진주 논개제는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주만의 소재이며 순수예술 중심으로 열리는 가을의 개천예술제 및 진주남강유등축제와 함께 진주가 문화 예술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떨치게 한다.
논개제의 백미는 뮤지컬 ‘논개’라 할 수 있는데 촉석루와 의암을 배경으로 촉석루 바로 밑 남강물 위에 설치된 간이 좌석에 관객들을 모시고 진행된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처절한 전투장면이 연출되고 마지막 논개가 왜장을 안고 추운 남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연출한다. 관객의 대부분은 진주시민들인데 이분들의 관심은 뻔한 스토리보다 맨 마지막 부분에 여주인공인 논개가 왜장을 안고 ‘의암’위에서 춤을 추다 얼마나 멋있게 차가운 남강물 속으로 뛰어드는가에 관심이 쏠려 있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다친 사람들이나 심장마비로 인해 곤란을 겪은 배우가 없다는 것으로 참 신기한 일이다. 논개제는 특히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 축제문화가 거의 없던 시절 의식 있는 지방관과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축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전국적으로 온갖 종류의 축제들이 펼쳐지고 있고 경주에서도 다양한 테마로 축제를 열고 있지만 대부분 큰 차별점 없이 천편일률인 것과 분명히 구별되는 점이다. 역사성과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축제는 비록 대외적으로는 유명세를 떨치지 못해도 주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끈질긴 지속성을 살릴 수 있다.
논개가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진주의 주인공이었다면 필자가 몇 년 전 살았던 아일랜드에도 논개와 견줄만한 여인이 있다. 17세기 중반(1651년) 크롬웰의 침공을 받은 아일랜드에 살던 Mary Ru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여인은 불타는 빨간 머리 때문에 일명 빨간 메리(Red Mary)로 알려져 있으며, 크롬웰 침공에 맞선 유명한 영웅담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녀는 1615년 Clonderlaw의 영주인 Torlach Rua McMahon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인 다니엘(Daniel O`Neillan)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큰 유산을 남겼는데 이 돈으로 아일랜드 서부 Clare 카운티에서 가장 장엄한 17세기 맨션 하우스 Leamaneh Castle을 지었다. 재혼했으나 크롬웰의 국토유린과 대량학살이 자행되며 성을 지키던 두 번째 남편이 크롬웰 군에 의해 죽었다. 레드 메리는 즉시 최고의 드레스를 입고 자신이 살던 고장 리머릭(Limerick)을 지키기 위해 마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협상에서 토지와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크롬웰 가문의 장교와 결혼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크롬웰의 충실한 부하 쿠퍼(Cooper) 대위와 결혼하고 며칠 후 말다툼 중 쿠퍼를 3층 발코니에서 밀어 죽게 만든다. 사고사를 가장한 계획된 살인으로 쿠퍼의 죽음으로 인해 크롬웰군은 치명상을 입고 이후 서북 대서양 연안으로 진군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매리는 자신의 농장과 성을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아일랜드를 지킨 영웅이 되었다.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계사는 1953년 6월)는 10만에 육박하는 왜군을 맞아 장렬히 싸우다 관군과 의병뿐만 아니라 백성 4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1차 패배의 아픔을 설욕하기 위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있었으며, 남강이 흐르는 진주성 인근 100여 리가 주검으로 뒤덮힐 지경이었다. 마찬가지로 1651년 아일랜드를 침공한 크롬웰 역시 살인과 약탈, 방화를 저질러 당시 아일랜드 인구의 1/4인 20~30만 명이 죽을 정도로 처참했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백성들이 좌절감을 느낄 때 혜성같이 나타난 두 여인의 공통점은 침략군에 맞서 통쾌한 한 방을 먹인 것이다. 논개의 가락지와 의암, Leamaneh Castle이 남아 있어 지금까지 영웅담이 되고 있음은 무도한 약탈자들에 무작정 당하지만 않았던 ‘기개’를 높이 산 후손들의 평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족으로 논개와 레드 메리의 대비처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던 아일랜드와 우리나라는 닮은 점이 매우 많은 편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듀이(John Dewey)는 1919년 중국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마침 한국에 대해 ‘한국은 제2의 아일랜드’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존 듀이의 입장에서는 아일랜드가 한국보다 훨씬 유명한 나라였으니 한국을 제2의 아일랜드라고 표현했겠지만 지금 같으면 레드 메리를 ‘아일랜드 판 논개’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바로 이것이 2022년 논개제에 즈음하여 진주를 넘어 아일랜드까지 생각의 영역을 넓혀 보게 된 이유다. 오늘도 ‘강남콩 보다 더 푸른’ 진주 남강을 바라보며 논개의 충절을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