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TV에서 형사 콜롬보를 즐겨 시청하였다. 이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용의자를 윽박지르거나,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 물리적인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어리숙하게 보이면서도 주도면밀히 증거를 수집·분석하여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하였다. 그의 논리에 용의자들은 꼼짝없이 범행을 실토하고 사건이 마무리 되는 내용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흥미진진하게 시청하였을 것이다. 콜롬보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범죄 현장에 가서 머리카락이나 실오라기 등등의 물증을 수거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범죄 사건이 ‘언제’ 발생하였는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고고학도 물증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형사들처럼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수집한 고고학적 물증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똑같은 유물과 유적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발생하는 것은 연구자들 판단 기준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제 눈에 안경이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러나 심각한 범죄 사건을 다룰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수사를 잘못하여 진범을 잡지 못하면 엉뚱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해야 할 수도 이따금씩 있으니 말이다.
범죄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발생 시점이다. 이것이 먼저 밝혀진 후에야 용의자가 추정되고 용의 선상에 있는 사람이 범죄 발생 당시 어디에 있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용의자가 여러 명 일 수 있지만 사건이 발생할 당시 멀리 혹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었던 것이 밝혀지면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다. 이것이 소위 ‘알리바이 성립’ 즉, 현장 부재 증명이다. 결국 6하 원칙 맨 처음에 나오는 ‘언제’가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범죄 수사처럼 연대 파악은 고고학의 출발점이다. 이것을 먼저 알아야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심 대상인 과거 사람들이 남긴 물질문화인 집과 무덤 양식 그리고 석기, 토기, 청동기, 철기 등 각종 유물들의 양식이 ‘어떻게’ 그리고 ‘왜’ 변해갔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 고고학 분야에서 연구의 초점을 지나치게 연대 파악에 맞춘 적도 있었다. 아직도 그런 경향이 농후한 것은 연대 파악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래 자연과학적 연대측정법이 개발되면서 안정적인 연대 파악이 가능해지고 있다. 그러나 연대 파악이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은 하면서도 이를 소홀히 다루어 역사해석이 완전히 달라져 왜곡된 사례가 있다.
경주 시내에는 작은 산만한 무덤들이 즐비하게 있다. 이 무덤들은 목관, 목곽, 그리고 냇 돌과 흙으로 축조된 것으로 돌무지덧널무덤 혹은 적석목곽분이라고 불린다. 신라 고유의 독특한 구조와 형식을 가졌으며 화려한 껴묻거리를 넣어서 축조한 것이다. 이 무덤들이 언제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축조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무덤의 출현을 ‘북방기마민족 이동의 산물’로 보았다. 이를 주장하는 일부 고고학, 미술사, 그리고 복식사 연구자들은 북방/중앙아시아(예, 카자흐스탄의 파지리크 고분)와 경주에서 발견되는 무덤들의 외형과 구조의 유사성 그리고 황금 유물과 마구 등을 근거로 그 친연성을 거론한다. 이런 내용이 TV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 학설 지지자들은 북방아시아와 경주에서 발견되는 무덤 사이에 큰 시간 및 지리적 공백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향후 이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분히 피상적인 관찰이고 비논리적이다. 신라에서 자생한 독창적인 무덤 양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데 이는 ‘평행 발전’으로 설명된다. 상이한 문화가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상호 접촉이 없었음에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시간적 간격은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좁혀지지 않는다.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북방기마민족들이 활동한 시기는 최소한 기원전 300년 이전이고 경주에서 돌무지덧널무덤이 출현한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기원후 300년경으로 500-600년 이상의 시간차가 난다. 경주에서 이 무덤이 축조될 때는 기마민족들이 역사상 사라지고 난 이후이기 때문에 말을 타고 올 사람들이 없었다. 알리바이가 성립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덤 구조와 유물의 상사성을 논한다는 자체가 고고학적으로 모순이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언제’라는 연대 문제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소홀히 다루었을 때 이처럼 역사·고고학적으로 엄청난 해석상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북방기마민족 이동’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 학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쉽게 풀릴 문제가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지부진하고 있다. 어리바리하게 보이는 콜롬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