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오토바이를 저렇게 험하게 모냐?”, “아빠, 배달하는 저 형들 아빠보다 돈 더 많이 벌어!”, “많이 벌면 뭐해?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야”
손에 든 아이스크림 핥으며 아들이랑 실없이 잡담을 주고받는, 어느 주말이다. 아참, 우리가 라면은 샀었나 고개를 돌렸더니, 아들 녀석 뒤로 자동차 한 대가 따라오고 있었다. 번호판이 파란 걸 보니 전기차다. 낄낄대는 우리를 앞지르면 놀랠까 봐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말이라 양쪽 길에 주차해 놓은 차들로 좁아진 길은 추월하기도 여의치 않았을 테다. 제법 긴 길을 조용히 따라왔을 운전자분의 인내심과 그만큼 산만했던 우리의 무신경함이 부끄러워 얼른 길을 비켜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개도 살짝 숙이면서...
이런 종류의 해프닝이 잦은 요즘이다. 도로에 뜨문뜨문 보인다 싶더니 언젠가부터는 흔하디 흔한 게 전기자동차다. 화석 연료를 안 쓰니까 일단 가성비가 좋고, 정부 보조금에다 고속도로 통행료나 주차장 할인도 받고, 또 부품 정비도 간단하다니 장점이 참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정숙함을 꼽을 수 있는데,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엔진이 없으니까 당연히 엔진음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보행자 입장에서는 쉬이 인지하기 어렵다. 크고 작은 사고가 그 과정에서 생겨난다. 상황이 이러니 자동차 규제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EU를 비롯한 일본 등의 나라에서는 전기차의 소음 기능 의무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가상 배기음 장착이 의무 사항이다.
한편, 올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화제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어느 배우가 자신의 와이프에 대한 인신공격성 농담을 한 사회자 얼굴을 냅다 가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손뼉 칠 일도 있다. 독일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영화 《듄(2022)》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 유명한 《라이온 킹(1994)》에 이어 두 번째로 거머쥔 음악상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 《인터스텔라(2014)》OST를 작곡한 바로 그 작곡가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독일 유명 자동차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또 한 번 박수 세례를 받았다. 새로 출시한 전기 자동차에 배기음을 ‘작곡’해 준 것이다. 부릉~부릉하는 엔진 배기음 대신에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를 입힌 것이다. 유튜브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다. 액셀을 밟거나 발을 떼거나 아니면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소리로나마 우주선이 가다 서행하다 멈추는 느낌 그대로를 구현해 냈다. 0에서 시작한 디지털 숫자가 가파르게 올라 (시속) 225에 도달할 때면 마치 성층권을 뚫고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우주선이 된 듯한 느낌이다. 슈웅~이라고 번역할 수밖에 없는 언어적 한계를 용서해 달라. 이렇게 말고는 어째 표현할 길이 없다. 멍멍~ 하는 한국 개가 영국엘 가면 우프~우프(woof woof)하고 짖고, 중국에서는 왕~왕(wang wang)거리며 캐나다에서는 이잡~이잡(jappe jappe)하고 짖는단다.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지만 충분히 다르게 들릴 수 있겠다.
어쨌든 지독한 매연을 내뿜는 내연 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자연 친화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아들은 생떼를 쓴다. ‘에코 프랜들리(eco-friendly)’라면 자동차도 자연이 내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다. 우리 아들은 그래서 전기차에 나이팅게일 새소리를 입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팅게일이라... 노래를 잘하면 흔히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고 하는데 그게 이 나이팅게일이란다. 창의적일 정도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며 밝고도 예쁜(전할 방법이 없는 게 아쉽다)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 느낌이라면 딱, 오페라 [마술피리] 밤의 여왕 아리아 같다. 모차르트는 분명 나이팅게일 소리를 들으면서 악상을 떠올렸으리라. 정말이지 ‘눈이 열리고 귀가 확 트이는’ 소리다.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를 듣고 몸이 즉각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 전기차에서 내는 소리로는 훨씬 현실적이고 미적이라나... 녀석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유효 기간이 한참 지난 것이었거나, 아님 우리 아들이 로맨티시스트이거나 둘 중 하나다. 당연히 난 후자 쪽에 한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