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중세에 가려져 있던 고대 그리스 문화의 부활이자 재생이었다. 그리스 문화의 핵심인자는 신화(神話)였고, 이후 다양한 예술분야에 투영되었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오르페오 신화는 최초의 근대적 오페라였던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로 시작하여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를 거쳐 최근까지도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그리스의 여러 신들 중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베토벤과 연결되어 있다.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1802) 사건 전에 두 편의 발레음악을 작곡했다. 두 작품 중 나중 작품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the creatures of Prometheus)’이다. 이 작품은 서곡과 16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날에는 서곡만 따로 연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베토벤의 극음악은 오페라 ‘피델리오’(1805)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젊은 베토벤은 발레음악에도 손을 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들고, 불을 훔쳐와 인간을 이롭게 한 신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없었다면, 인간은 동물들의 지배를 받는 매우 나약한 존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는 신 이상의 영웅적 존재였지만, 불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제우스에겐 대역 죄인이었다. 결국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끌고 가 사슬에 묶고, 날마다 독수리를 보내 그의 간을 쪼아 먹도록 하는 극형을 내리고 말았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 아닐까? 20대 후반에 이미 난청을 앓았던 베토벤은 간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이다. 음악가가 귀로 들을 수 없다는 건 간이 쪼이는 아픔 이상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창작동기가 되지 않았나싶다. 안타깝게도, 베토벤과 프로메테우스는 모두 인류에게 크나큰 선물을 했지만, 돌려받은 건 감내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베토벤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음악작품을 남겼지만 귀머거리가 되었고,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 불을 준 대가로 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였다. 하지만 사실귀정(事必歸正)이라 했던가? 그들은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고 승리하고 만다.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들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윤동주의 시 ‘간(肝)’의 제2연이다. 여기서 ‘토끼’는 프로메테우스이자 베토벤이고, ‘간’은 버릴 수 없는 신념을 의미한다. 베토벤과 프로메테우스는 모두 불굴의 신념을 가지고 극한의 고통을 이겨냈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을 들어보자. 그리고 베토벤과 프로테우스의 생명력을 한번 느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