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김상국이 부른 ‘불나비 사랑’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차라리 재가 되어 숨진다 해도 / 아, 너를 안고 가련다 불나비 사랑” ‘불나비 사랑’이란 노래 가사의 일부다. 만엽집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의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비와 같은 삶을 살다간 여인이 있었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액전왕(額田王)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류 가인이다. 그녀는 여인의 심리를 탁월한 기량으로 그려낸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녀의 작품으로 인해 만엽의 밤하늘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만엽집 9번가는 그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들 때 그녀는 왜국의 수뇌부와 함께 후쿠오카(福岡)로 가던 배에 타고 있었다. 그 배에는 제명(齊明)천황과 일본의 역사를 뒤흔들 천황의 두 아들 중대형(中大兄)과 대해인(大海人)이 타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대해인 황자의 연인이었다. <만엽집 9번가> 莫 囂圓隣 之 / 大 相七 兄 爪 湯 氣 吾瀨子 之 射 立爲 / 兼五可 新何本 “야단스럽게 떠들지 말고 원만하게 지내야지. / 중대형 황태자님께서 탕처럼 끓어 내 여울 속 남자를 활로 쏘려고 일어서려 하시네. / 새로 무엇을 근본으로 하리” 그날 배 위에서 왜국의 수뇌부들 사이에 무엇인가 심각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중대형 황태자가 펄펄 끓고 있는 온천탕처럼 열을 받아 대해인(大海人) 황자를 활로 쏘려 했다고 9번가는 전하고 있다. 백제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극도로 예민해 있던 시점, 백제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중대형의 뜻과는 달리 대해인 황자가 딴지를 걸자 생겨난 대충돌일 수도 있다. 액전왕이 ‘두 형제분께서 원만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또다시 강조하지만 향가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힘을 가진 노래이다. 액전왕은 향가의 힘을 빌어 형제를 화목시시키 위해 9번가를 만들었던 것이다. 작품에서 액전왕은 대해인 황자를 `내 여울 속 남자(吾瀨子)`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여울은 여성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을 것이다. 액전왕 스스로 자신이 대해인 황자의 여자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가수 김상국의 노래 불나비처럼 권력의 핵심이었던 남자를 뜨겁게 사랑하며 온몸을 불태웠다. 만엽집은 파병전야 후쿠오카로 가는 배 위에 있었던 일을 그리는 여러 작품들을 수록해 놓고 있다. 죽은 손자를 그리워하는 제명천황의 흐느낌이 있었고, 형제의 격한 충돌이 있었고, 여류 가인의 사랑도 있었다. 이 작품을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莫囂圓隣之大相七兄爪湯氣 - 나의 님께서 서서 계시었지. 저 감탕나무 밑에” 이 작품은 만엽집에 실린 작품 중 해독이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위의 풀이에서 보듯 25자의 글자 중 앞부분 12글자에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겨우 뒤의 13글자만 풀어 놓고 있다. 이것조차 작품의 원뜻과는 전혀 다른 풀이다. 이러한 풀이로는 그날 배 위에 있었던 일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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