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여럿 있지만, 필자는 그중에서 불멸의 여인(immortal beloved/ 1994)이 가장 좋다. 이유는 영화 내내 베토벤의 작품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적 상상력도 맘에 든다. 사실에다가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관객들의 흥미를 무한대로 자극한다. 팩션(faction)은 아마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영화의 발단은 1827년 베토벤이 죽자 발견된 편지 한 장이다. 수신인이 바로 ‘불멸의 여인’,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모른다. 베토벤은 유언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그녀에게 남겼다. 도대체 ‘불멸의 여인’은 누구이고, 베토벤은 왜 그녀에게 유산을 남겼을까? 고인의 친구인 쉰들러는 오랜 시간 탐문 끝에 ‘그녀’를 찾아낸다. 그녀는 놀랍게도 베토벤이 생전에 노골적으로 경멸하던 요안나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팩트(fact)는 다음과 같다. 요안나는 베토벤 동생인 카스퍼의 부인이다. 베토벤은 동생의 연애시절부터 둘의 결혼을 반대했었고, 동생이 죽자 소송을 통해 조카 칼의 양육권을 빼앗아 올 정도로 요안나에 적대적이었다. 영화는 카스퍼와 요한나의 결혼 전에 베토벤과 요한나가 연인관계였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운명적인 오해 때문에 둘은 헤어졌고, 요안나가 카스퍼와의 결혼 후 낳은 아이 칼은 베토벤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동생의 결혼을 반대하고, 동생 사후에 칼을 데리고 온 이유에 대해 꽤나 단단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현악사중주 16번의 4악장 악보에는 “꼭 그래야 하나?(Muß es sein?)”, “꼭 그래야 한다.(Es muß sein!)”라는 가사가 적혀있다. 기악곡에는 쓸모없는 가사인데다가 모양새는 둘도 없는 선문답(禪問答)이다. 영화는 이 선문답을 영화 말미에 활용한다. 죽음을 목전에 준 베토벤을 요안나가 방문하는 장면에서다. 베토벤은 “꼭 그래야 하나?(Muß es sein?)”라고 묻고, 요안나는 “꼭 그래야 한다.(Es muß sein!)”로 답한다.
요안나는 베토벤이 죽고 나서 쉰들러로부터 문제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그날의 오해를 풀어주는 내용이 적혀있다. 요안나는 후회한다. 베토벤의 “꼭 그래야 하나?”라는 물음에 “꼭 그래야 한다”로 답하지 말았어야 했다.
불멸의 연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조카 칼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보였던 베토벤의 생애에 대해 절묘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베토벤과 요안나의 연애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겠지만, 이 설정이 영화를 흥미롭게 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악역 전문 배우인 게리 올드만의 캐스팅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이런 설정이 그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