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7월 9일, 서쪽에서는 당나라 소정방의 군사들이 한반도에 상륙했고, 동쪽에서는 김유신 장군의 지휘 하에 신라군이 백제의 사비성을 향했다. 백제는 태풍 부는 날 돛대에 내걸린 어선의 깃발처럼 갈기갈기 찢겨져 펄럭였다. 백제가 왜국에 구원을 요청했다. “당나라 사람들이 해충들(신라군)을 이끌고 와서 나라를 무너뜨리고 임금과 신하를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백제국은 사람들을 모아 다시 나라를 이루어 냈습니다. 바라옵건데 왜국에 가 있는 왕자 풍장(의자왕의 아들)을 맞아 국주(國主)로 삼고자 하오니 이를 허가해주십시오” 왜국의 제명천황이 명령(일본서기 660년 10월)을 내렸다. “백제가 창을 베고 자며 쓴맛을 보는 괴로움을 겪고 있다”면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장군들에게 명령하여 군사들을 신속하게 움직여 신라를 공격한다면 악인을 베어 백제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렵 왜국의 수도 아스카의 아이들이 이 골목 저 골목 동요(童謠)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괴상하고 복잡한 한자들로 짜여진 이 동요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가들은 백제파병을 앞둔 예민한 시점에 불리워진 이 노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이 노래를 풀어 내지 못하고 있다. 패전의 조짐이라는 등 온갖 억측과 상상 만이 천년을 횡횡하고 있다. 향가 창작법은 아무도 풀지 못한 이 동요를 풀어내어 우리 앞에 드러내었다. 摩摩比邏 矩都 能俱例 豆 例 於 / 能幣陀 乎 邏賦俱 能理歌理 鵝 美和 / 陀騰能理歌美 烏 能陛陀 烏 邏賦俱 / 能理歌 理 鵝 甲子 騰和 與 騰美 烏 / 能陛陀 烏 邏賦 俱 能理歌理 鵝(일본서기 660년 12월) “뼈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똑같이 순라를 돌아야 할 것이라네. / 공평하게 순라를 돌게 하는게 전례라네. / 돈을 내던 비탈길 순라를 돌던 세납은 공평해야 한다네. / 그렇게 하면 다스림이 노래로 불려지고, 기려지게 되고, 모두가 화합하게 될 것이라네. / 그렇게 하면 비탈길을 달리게 할지라도 노래로 불려지고, 기려질 것이라네. / 궁에서 시립하던, 비탈길에서 순라를 돌던, 세납은 공평해야 한다네. / 그렇게 하면 다스림이 노래로 불려지고, 다스림이 육십갑자 중 첫째로 꼽히게 될 것이라네. / 비탈길을 달리게 하더라도 화합하게 되고, 기려질 것이라네. / 궁에서 시립하고, 비탈길을 순라 돌 지라도 세납은 공평해야 한다네. / 그렇게 하면 다스림이 노래로 불려지고, 기려진다네” 노래는 ‘병력을 징발하고 군비를 거둘 때 공평하게 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패전의 조짐을 말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승리의 조건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골목을 뛰어 다니며 힘껏 노를 젓는가 하면, 구경하는 사람들을 쪼아대는 거위 시늉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따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矩(곱자 구)와 鵝(거위 아)라는 원문 속의 문자 때문이었다. ‘곱자’란 ‘ㄱ’자의 모습으로 꺾여진 자를 말한다. 허리를 ‘ㄱ’자 모습으로 꺾으며 힘껏 노를 저으라는 뜻이었다. ‘鵝(거위 아)’는 거위처럼 꽤애액 꽥! 울면서 침입자를 위협하고 맹렬하게 공격하라는 말이었다. 거위는 낯선 사람들이 오면 부리로 쪼아대 공격하는 동물이다. 왜국의 군사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맹렬하게 공격하는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맹렬히 싸울테니 조정에서는 공정하게만 해 달라고 요구하는 민심이 향가로 표출되었다. 향가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것이고, 징발된 군사들이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향했다. 파병전야의 동요는 향가였고, 향가는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골목길에서 공연되고 있었다. 향가는 현대 종합 무대예술의 대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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