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이 나이들어 세상을 대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적어도 경주 출신 두 거장의 방법은 낮은 곳, 근원적인 곳을 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난 4월 27일 강남의 모음식점, 대한민국 만화계의 거장 이현세 화백과 한국 탁구사에서 불후의 금메달 신화를 이룬 강문수 감독이 기자와 만나 환담했다.   두 거장은 경주출향인사라면 누구나 아는 두 해 터울의 선후배 사이이자 가장 친근한 절친이자 사는 지역도 강남구 일원동 일대에서 오랜 기간 근처에 살면서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 심지어 몇 해 전 위에서 용종이 발견돼 몇 달 터울로 내시경 제거 수술을 받았고 최근 코로나19조차 같은 시기에 걸리는 등 절친다운 행보를 과시(?)했다. 이들 두 거장은 이제 사회적인 명성이나 인기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재능과 명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 아낌없이 기여하겠다고 다짐한다. 이현세 화백은 지난 3월 구 황남초등에 마련된 경북 웹툰캠프스에 명예총장으로 위촉됐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이름만 걸어주고’ 실권은 챙기지 않는 명예직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경북도가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2월에는 역시 경주 출신 이상훈 작가와 네이버에 웹툰 ‘늑대처럼 홀로’ 연재를 시작해 평소의 소신처럼 이야기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길도 부지런히 걷고 있다. 강문수 감독은 지난 3월 말 대한항공 탁구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해 팀 내에서 일어난 따돌림 및 폭행사건의 책임을 감독인 자신이 온전히 진다는 차원에서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선택했지만 이에 대해 오히려 초월적인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갑질논란에 휩싸인바 있는 대한항공 경영진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용단을 내린 강문수 감독에 대해 탁구계 전반이 안타까움 일색이었다. 강문수 감독은 앞으로 승부와 보수를 떠나 어린이 탁구교실이나 노인들을 위한 생활탁구 등을 통해 자신이 평생 안고 온 탁구를 나누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침 강문수 감독은 두 해 전 이현세 화백이 평창올림픽 후 ‘진인사대천명’의 문구를 써 선물한 노트를 언급했다. 거기에 도광양회와 마부작침을 직접 써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대항항공에서 활동하면서 반 넘게 노트를 썼다고 설파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승부사 감독의 순간을 그 노트에 기록한 강문수 감독은 그 빼곡한 기록을 가장 낮은 곳에서 펼쳐 보이고 싶다며 술잔을 비웠다. 그 말을 들으며 이현세 화백이 강문수 감독에게 술 한 잔을 주르륵 따랐다. 술잔이 보기 좋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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