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체 게바라의 본명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대학 신입생 때 어느 집회에서 판매하는 티셔츠의 그림에서 일 것이다. 전설처럼 들려오는 그의 이야기를 짜집기하여 막연하게 쿠바의 민중혁명가로만 알고 있던 그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의 세월이 흐른 2005년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부터이다.
그때는 80년대와 90년대 초를 관통하던 민주화의 거대한 흐름과 사회주의 체계의 붕괴를 몸살감기처럼 심하게 앓고 난 때이다.
이미 이념과 사상 따위는 먼지 냄새 풀풀 나는 낡아빠진 것들로 취급되던 그때, 나는 체게바라를 혁명가가 아니라 철저한 휴머니스트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체 게바라 평전」은 시대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하였다고 평가받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쿠바혁명의 성공 이야기보다 그가 천식을 심하게 앓았던 어린 시절과 의과생으로서 오토바이를 타고 민중들의 삶을 돌아보았던 청년기를 비중 있게 다룸으로써 어떻게 민중의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체 게바라는 대륙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가난한 민중의 처절한 삶을 목격하고 제국주의의 횡포로 무너지는 과테말라의 개혁정부를 보면서 각성하게 된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다수 민중들을 위한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체 게바라는 쿠바의 민중혁명을 이끈 사령관이었고 아프리카 콩고에서, 남미대륙의 볼리비아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게릴라였다.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민중의 힘으로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그의 말은 수십 년이 지난 후 지구 반대편의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촛불혁명을 통해 그 진리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는 늘 민중의 편에 선 세계시민이었고 나라와 대륙의 경계를 넘어 늘 핍박받는 민중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혁명가 이전에 민중들을 누구보다 사랑한 휴머니스트였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오롯이 그의 삶을 희생하였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나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지역자활센터의 실무자로 가난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직업적인 관점보다는 빈민운동의 사회적 활동가로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고 체 게바라의 일대기는 그대로 나의 삶에 투영되었던 것 같다.
내가 편안하고 안정되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체 게바라처럼 되고 싶었으나 그 근처의 삶에도 닿아보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늘 방향이었고 지향점이었다. 어쩌면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위대한 인물을 닮고 싶었던 것은 과한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쿠바혁명을 완수하고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2인자로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체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 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총살당한다. 그가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사령관’으로 살아있다.
체 게바라는 전 세계 좌파 진영과 시대 저항정신의 아이콘이며, 핍박받는 소수를 위한 가장 전투적인 게릴라로서 우리와 늘 함께하고 있다.
반백 살을 향해가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활동가를 지향하고 노력한다. 도시재생의 현장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서 주민들과 상인들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을 돕는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만들어가며 체 게바라가 꿈꾸고 만들고자 했던 사회주의의 작은 모델들을 실현하고 있다.
20대 청춘 시절의 세상을 향한 분노와 정의감은 조금 식기는 했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기득권이 주도하는 시대를 향한 전선(戰線)은 여전히 폐기되지 못했으며, 그때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의 길은 늘 삶의 방향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지만 당연하게도 체 게바라를 향해가는 나의 걸음은 여전히 소원하며 아직도 과한 욕심이다. 다만 그의 방향을 좇다 보면 언젠가는 그 위대한 삶의 발뒤꿈치쯤이라도 닿아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체 게바라의 ‘Che’는 ‘나의’ 라는 뜻을 가진 인디언 토속어라고 한다. 체 게바라는 영원히 ‘나의 게바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