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은 아니지만 오래전 한옥 위주의 생활을 하던 때 거의 연례행사처럼 하던 큰일이 있었다. 묵은 문종이를 걷어내고 새 문종이를 바르는 일이었다. 문종이는 창호지(窓戶紙)라는 말로 더 익숙한데 나무로 짠 문짝에 바르는 넓은 종이를 일컫는 말이다. 창호지는 여러모로 쓰임이 많은 종이다. 닥나무를 두드려 그 조식을 걸러서 종이로 만드는데 이렇게 만든 창호지는 질기고 탄력이 좋아 문에 바르면 일 년쯤은 너끈히 견디고 좋은 환기성과 계절에 따른 습도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방 공기를 언제라 쾌적하게 해준다. 창호지를 일 년에 한 번씩 갈아주는 이유가 있다. 우선 미관상 일년쯤 지나면 종이가 누렇게 변해서 보기 흉해진다. 담배 피는 집안 어른이 있으면 창호지가 훨씬 빨리 누렇게 변한다. 담배뿐만 아니라 종이에 난 작은 조직에 먼지가 끼어 종이 빛깔이 어두워지고 환기도 덜 된다. 또 한 가지, 아무리 탄력이 좋은 종이라도 결국 이게 얇은 종이이기 때문에 수시로 구멍이 난다. 짐을 옮기다가 뚫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손가락으로 장난삼아 쏭쏭 뚫기도 해서 특히 문짝 아래쪽으로는 더 많은 구멍이 뚫린다. 구멍이 나면 같은 재질의 창호지를 오려서 풀을 발라 봉하는 것이 보통인데 사람들이 부지런하지 않거나 집안이 좀 가난한 집은 문짝이 온통 땜빵 흔적으로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창호지만 봐도 그 집안 사람들이 기본적인 품성과 빈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한옥 특성이 환기성은 떨어지는데 반해 보온성은 떨어져 자주 문 여닫는 것을 자제했는데 일부는 문짝 적절한 곳에 손바닥 만한 유리를 대서 문을 열지 않고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붙박이 봉창을 만들기도 했다. 황담비 씨가 운영하는 한옥독채펜션 휴심원에 최근 창호지 바르는 행사가 열렸다. 문짝 전부를 물에 불려 기존의 종이를 떼 내고 닦은 뒤 잘 말린 다음 종이에 풀을 발라 문짝에 바르는 일이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닌데 이를 즐겨 하는 황담비 씨를 보면 휴심원에 깃든 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종이 바른 문짝을 좋은 햇살에 말리면 탱탱하게 펴지며 눈부시게 빛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잘 피어난 꽃처럼 보기 좋다. 한옥이 급격히 사라지고 현대식 한옥은 문짝 대부분을 나무로 달거나 창도 유리로 대치하는 등 이전의 창호지 바른 문은 거의 사라졌다. 창호지 바르는 모습 올려준 황담비 씨 페이스 북에서 우리네 세시풍속을 새롭게 떠올리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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