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이다. 따뜻한 침대 속에서 뒹굴거리는 나를 방해하는 카톡 문자가 날아왔다. “난 통밀로 된 에그 샌드위치”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와이프의 밑도 끝도 없는 문자다. 바로 이어 노란색 창에는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알지?”라고 뜬다. 우리 동네 빵집에는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커피를 공짜로 준다. 샌드위치는 오전 10시 정도에 가면 이미 다 팔리고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빵 안에 들어가는 재료가 신선하고 맛있기 때문이라니까 이구동성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란다. 믹스 커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커피 때문에 빵을 산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단다. 다행히 빨간색 지붕의 빵집엔 두어 사람만이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빵 두 개 하고 에그 샌드위치 두 개를 계산대에 올리며 “커피는 한 잔만 주세요.” 했다. 내 주문이 이상하게 들렸나? 다들 쳐다본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얼른 복기를 해봤더니 아차,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하지 않았던 거다. 얼른 정정했다. “커피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로 주세요” 알바생의 커졌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 보니 예상대로다. 여기는 한 겨울에도 얼음 동동 떠 있는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대한민국이다. 오죽하면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협회도 있다. 날씨가 추워진다고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고 서로들 독려한다. 정말이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우리라서 인지 커피도 정말 화끈(!)하게 마신다. 직접 로스팅을 하거나 주변에 신선한 원두를 사용하는 카페가 늘어나면서 에스프레소에 물만 넣어 먹는 아메리카노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흔히 에스프레소 2샷을 넣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탕수육의 소위 부·먹 찍·먹 논쟁처럼, 커피 잔에 얼음을 먼저 넣을지 물을 먼저 넣을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얼음물 컵에 에스프레소를 붓는 방식은 똑같다. 그게 그거지만 한국인들은 뜨거운 에스프레소에 얼음이 녹는 걸 싫어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인들의 아이스커피 사랑은 알아준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예외 없다. 누구는 여름엔 더워서 마시고, 겨울엔 히터 때문에 답답해서 마신다고 한다. 삼겹살이나 걸쭉한 국물 음식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입 안의 텁텁함을 없애주는 데 최고란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알아서 아이스(iced americano)를 내놓더란다. 스스로를 노르웨이 사람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세상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세상은 배울 게 참 많다.’고 했다. LA에서 커피숍 알바를 했던 어느 미국인은 멀리서 한국인처럼 보이거나 교회 사람들, 아니면 학생들이 가게 쪽으로 오고 있다면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한다고 했다. 주문을 안 받아보고도 경험상 안다. 그들은 100% 아이스 아메리카노(아니면 라떼)를 주문하기 때문이다. 주문한 아이스커피를 손에 꼭 쥐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정상일까? 이래도 되나? 추운 날씨에 찬 음료를 마시면 당연히 혈압이 올라간다. 커피라서 그런 게 아니다. 보통 날씨가 추워지면 혈압은 올라가기 마련인데, 차가운 음료는 혈관을 더욱 수축시킨다. 와이프도 한 번씩 얼음 가득한 커피를 홀짝이다가 머리가 띵하다며 인상을 쓴다. 본인은 카페인이 복잡한 머릿속을 청소 중이라지만, 그건 찬 음료로 인한 두통이고 어지러움증이다. 얼죽아 협회는 반대하겠지만 맞는 소리다. 또 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는 위장의 기능도 떨어뜨린다. 일정한 온도의 위장에 갑자기 찬 게 넘어오면 위장의 연동운동이나 소화액 분비는 저하된다. 소화 장애가 유발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항온(恒溫) 동물인 우리 몸에 차가운 게 규칙적으로 들어오다 보면 면역체계가 흐트러지게 된다. 찬 커피가 우리 건강과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인이 미국 여행을 갔다가 낯익은(핑크색 숟가락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이길래 무작정 들어갔단다. 다국적 기업이니까 한국에서 즐겨먹던 메뉴도 있겠다 싶어 주문을 했다. 혀를 굴려가며 “mom is alien(엄마는 외계인)”이라고 했더니 계산대 너머 직원이 “wow(와, 놀랍군요!)”하더란다. 주문 대신 웃는 얼굴로 자기 엄마가 외계인이라고 고백하니 몹시 당황했던 모양이다. 이래저래 한국인들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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