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오는 책들은 쉽게 읽히긴 하는데 이걸 읽다고 보면 내가 왜 이 시간에 이걸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반면에 동양의 고전들은 쉽게 읽히지는 않아도 읽을 때마다 그 뜻이 새록새록 살아나기도 하고 때론 다른 의미로 다가와 읽을 때마다 큰 감동을 줍니다” “영화는 아주 오래전에 본 ‘꽃피는 팔도강산’ 이외에는 기억 나는 게 없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고 해도 장면 전환이나 이야기 전개가 선연히 와닿지 않고 특히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들은 도무지 왜 그런 대사가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이 코너 나의 책, 나의 영화는 당초 목적이 수준 높은 고전이나 고매한 가르침을 주는 영화도 물론 좋지만 그저 시중의 누구나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책과 영화가 주는 가치를 다시 따져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서예가 남령 최병익 선생에 이르러서는 이런 기획의도 자체가 부질없어졌다. “책은 고전이 아니면 재미가 없고 영화나 드라마는 봐도 이해가 안 됩니다!” 남령 선생은 그런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번 생에서 억지로 시대에 맞추어 자신을 바꿀 마음이 없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책을 보고 어릴 때부터 해오던 글씨에 온전히 자신을 담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고전이란 게 그렇지요. 500년 전에도 읽혔고 500년 후에도 읽힐 책 아니겠습니까? 물론 지금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책들이 있고 그 나름의 가치는 있겠지만 그래도 대대로 가치를 인정하며 읽어온 책들이 가지는 무게만은 못하겠지요” 남령 선생은, 그래서 추천하는 책이 ‘논어’다. 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공자를 모시던 제자들이 모아놓은 책이라 전해지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공자의 말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게 실려있어 이게 공자의 제자가 아닌 그보다 후대의 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임을 알 수 있다. “때로는 한 줄을 읽어도 그 깊은 뜻에 매료되어 무릎을 칠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깊이 할수록 뜻이 새겨져 비록 하루에 몇 줄밖에 읽지 못해도 만족감은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뜻글자인 한문은 같은 문자의 배열을 두고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중국 고전이라고 하는 많은 책들은 대(代)를 달리하며 책에 주석을 달고 그 주석을 후세의 사람이 읽고는 다시 주석을 다는 해프닝도 벌어지기 일쑤다. 남령 선생이 읽을 때마다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 이유는 고전을 한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흔히 논어나 맹자 같은 고전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중국 고전이 왕조 시대의 일방적 충성을 강조한 고리타분한 말들만 늘어놓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들을 한 번이라도 정독해 보면 현대적 의미로 봐도 놀랄 만큼 혁명적이고 신선한 말씀들이 도처에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맹자는 가장 이상적인 정권교체를 같은 성씨의 세습이 아닌 선양(宣讓)으로 규정할 만큼 선각적이다. 이로 미루어 공자나 맹자 같은 대현들이 우리가 흔히 폄하해 말하는 공왈맹왈, 허구한 날 똑같은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더구나 하루에도 수백 권씩 두서없이 가벼운 책들이 출간되고 출처조차 없이 떠도는 인터넷 잡글들이 횡행하는 요즘에는 더욱 고전의 가치가 절실하다. “말씀들을 가만히 생각해 볼라치면 얼핏 보기에 굉장히 쉬워 보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간에 존중하고 친구끼리 신의를 지키라는 말들이 얼마나 쉬운 말처럼 보입니까? 그러나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 쉬워 보이는 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강조해놓은 것만 보더라도 고전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남령선생은 이야기의 끝에 그래도 잠깐 기억나는 영화로 ‘명랑’을 꼽다가 그마저도 제대로 장면 전환에 어려움을 느껴 제대로 다 못 보았다고 실토했다. 그러고 보니 명랑에 나왔던 이순신 장군의 중요한 대사가 기억난다. ‘충은 모름지기 백성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는 대사다, 이 역시 맹자에 나오는 말씀을 재해석한 것이다. 맹자는 군주가 어리석으면 신하가 서슴없이 군주를 폐해야 하며 이런 논조에서 지배 세력의 마지막 단계인 사(士)가 어리석으면 백성들이 사를 폐해야 한다고 말해 백성, 국민이 가장 중요한 국가주체임을 분명하게 설파하고 있기도 하다. 남령 선생이 ‘논어’를 추천하는 말씀에 이런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릇 성현의 말씀은 최첨단 문화의 산물에도 이처럼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덤덤히 밝히는 남령 선생에게서 오히려 오직 한 길, 서예에 정진해온 선비의 우직함이 느껴져 자못 숙연해질 뿐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