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빗장을 걸 수 없다. / 둔중함과 더딤… / 그저 하찮은 존재로 살다갈 수밖에 없나? 나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불타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숨과 체념이 늘어간다. 내 피를 뜨겁게 달구던 흥분은 사라지고, 몸은 점점 중력의 힘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리스의 작가 메난드로스는 노래했다. 노년이여! 너는 인류의 적이구나.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너다. 너는 신체의 화려함을 둔중함으로 바꾸고 날렵함을 더딤으로 바꾸는구나. 몇 날, 몇 달, 심지어 몇 년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시간에 빗장을 걸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결국 삶의 더 큰 가능성에서 등을 돌리고 안락과 타협만 좇는 나약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대로 우주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다시 삶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이 힘들고 정신이 몽롱해지기 전에 삶을 다시 추스르는 일을 지금 이 나이에 서둘러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나약함과 나태함을 쫓아낼 수 있을까?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에는 “5월의 싱그러운 환희 속에서 눈을 그리워하지 않듯, 크리스마스에 장미를 갈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5월에는 5월의 환희가,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이 있다. 천천히 흘러가는 인생 후반기의 시간에는 그 시간만이 지니는 즐거움이 있다. 호기심을 꺼트리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해 자신을 맡길 때 여생의 시간은 빛난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호기심 많은 로멘스 그레이를 꿈꿔보자.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기쁨과 놀라움 같은 감정에 인색해진다. 호기심과 유희성도 점점 사라진다. 이와 같이 나이 들면서 사라지는 어린아이의 특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젊게 나이 들 수 있다. 어린아이들처럼 활기차게 유쾌한 반란을 시작해보자.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젊게 나이 들 수는 있다. 젊음의 유전자를 일깨우면서 산다면 세월과 함께 늙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예이츠는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관능적인 젊은이들의 삶에 문제를 제기하고 노년의 삶을 사랑한다. 그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영적이고 지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가상의 시인을 내세워 노년의 초월적인 세계를 동경했다. 저곳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 서로를 부둥켜안은 젊은이들, 나무에 앉은 새들 / - 그 죽어가는 세대들 - 은 노래를 부르고 / 연어 떼가 튀는 폭포, 고등어가 우글대는 바다에서는 / 물고기, 들짐승, 날짐승이 여름 내내 / 잉태되어 태어나 죽어가는 모든 것을 찬미한다. / 모두가 관능적인 노래에 취해 / 늙지 않는 지성의 금자탑을 홀대한다. 노인은 그저 하찮은 존재, / 영혼이 손뼉 치며 노래하지 않는다면 / 썩어 없어질 모든 누더기를 위해 / 소리 높여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 노인은 막대기에 걸린 누더기일 뿐, / 영혼의 장엄한 금자탑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 노래를 배울 곳은 어디에도 없다. / 그리하여 나는 바다를 건너 /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다. 먹는 나이야 어찌하겠는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면서 노년의 삶을 살아갈 궁리를 해보자. 이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갖고 저녁놀처럼 아름답게 노년을 살아가자. 노년에는 물질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시각보다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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